국립외교원서 강연…"위안부재단 명칭으로 '치유'는 부적절"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한일 합의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해결로 나아가려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자신 명의의 사죄 서한을 피해자들에게 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와다 명예교수는 17일 국립외교원이 서울 서초구 외교원 청사에서 '한일 역사문제와 새로운 한일관계'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회의 특별 강연에서 이같이 밝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합의에서의 사죄는 완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 진보 지식인인 와다 명예교수는 과거 아시아여성기금 전무이사를 지내는 등 일본 내에서 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여해 왔다.

그는 "합의의 최대 문제점은 사죄의 주체인 아베 신조 총리 본인에 의한 사죄의 확인이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아베 총리의 사죄는 총리의 행위로서는 실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28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한일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이런 뜻을 전했지만, 공개된 자리에서 서한이나 육성 등 '자신의 말'로 직접 사죄를 표현한 적은 없다.

와다 명예교수는 "이번 기회를 최종적 해결로 삼고자 한다면 아베 총리는 기시다 외무상이 전한 사죄의 표현을 기재한 후 그 아래 자신이 서명한 서한을 작성해야 할 것"이라며 "이 서한을 주한 일본대사를 통해 피해자 할머니들께 전달하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일본이 합의에 따라 설립되는 위안부 지원 재단에 출연할 예산 10억 엔에 대해서도 "'사죄의 증거'로서 일본 정부가 내는 것이라고 설명을 보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와다 명예교수는 이미 사망한 피해자를 위해 "위령비 건설을 고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한일 합의를 양 국민의 기억에 남기려면 일본 정부 참가 아래 재단이 서울에 위령비를 세우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양국이 합의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역사 인식과 아베 총리의 사죄의 말 등을 위령비에 기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와다 명예교수는 한국 정부가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위안부 지원 재단의 이름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대행하는 것이 주된 활동인 이상 치유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재단 이름으로는 '화해·치유 재단'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는 "피해자의 명예·존엄의 회복을 위한 재단이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일 합의에 포함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문제에 대해서는 소녀상을 건립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수요집회를 끝내는 '문제 해결의 날' 이후에야 장래를 생각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일이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가 됐다는 것을 전제로, 합의문에 얽매이지 말고 이면에 있는 것들을 좀 더 발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했다는 확신을 한국인들에게 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적절한 기회에 총리나 주한 일본대사가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kimhyoj@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