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의 딸로 동독서 자란 독일 첫 여성 총리
당파초월 유로존 위기 넘겨…소탈한 면모의 실용주의자


22일(현지시간) 독일 총선에서 기민당(CDU)-기사당(CSU) 연합이 승리하면서 3선 연임이 유력한 앙겔라 메르켈(59) 총리는 '조용한 카리스마'로 지난 8년 집권 동안 세계금융위기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를 무난히 넘기면서 당파를 초월한 국가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독일 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인 메르켈은 2005년 첫 취임 때만 해도 참신성이 주무기였다.

그러나 12년 집권을 앞둔 지금은 무게와 안정감, 냉철함을 갖춘 '경세가'로 평가받는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명단에서 2010년 미국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에게 1위 자리를 한 차례 내준 것을 제외하고는 2006년부터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

1954년 서독지역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어릴 때 목사인 아버지의 임지인 베를린 북쪽 50km, 구동독 브란덴부르크주의 작은 마을 템플린으로 이주했다.

이후 라이프치히 대학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1978년부터 1990년까지 동베를린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등 동독에서 살았다.

물리학 박사 메르켈의 정치 입문은 1989년 동독 민주화 운동 단체인 `민주적 변혁'에 가입,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90년 3월 동독 과도정부의 대변인 서리에 임명된 메르켈은 그해 동.서독 통일 후 실시된 총선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발탁으로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 1994년 환경부 장관에 오르고 1998년 총선에서 기민당이 패배한 뒤 당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메르켈 총리가 동독 출신 여성 정치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정치 입문 15년 만에 남성, 가톨릭 중심의 보수정당 당수를 거쳐 3기 집권을 노리던 노련한 승부사 게르하르트 슈뢰더를 물리치고 2005년 총리직에 오른 것은 독일 정치지형에 새로운 지평을 연 엄청난 사건이었다.

헬무트 콜 전 총리가 키운 `정치적 양녀(養女)'로 성장했으나 끈기와 결단력으로 권력쟁취에 성공한 우파 여성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견주어 `독일판 철의 여성'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노조를 분쇄하는 데 힘을 쏟은 대처와는 달리 메르켈은 노조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무절제한 자본주의를 경계하며 사회적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2005~2009년 첫 집권 당시 사민당과의 대연정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60년 만에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서도 국내외적으로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실타래를 풀어나가 국민에게 강한 신뢰를 심어줬다.

2009년 재선된 메르켈은 자유민주당(FDP)과 보수 연정을 구성한 이후 양당 간 불협화음으로 2010년 초 연정 지지율이 사민당-녹색당에 뒤지자 금융권에서는 그의 사임설이 나도는 등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메르켈은 2011년 하반기 불거진 그리스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속에서 연정 내 불협화음을 잠재우면서 긴축 중심의 위기 극복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주변국의 구제금융 기금 분담액 증액 요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함으로써 독일의 이익을 대변한 것이 국민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과거 동독 시절에 공산당 청년 단체인 `자유 독일 청년(FDJ)'의 선전ㆍ선동 부장을 맡았다는 것이 총선을 4개월 앞둔 지난 5월 발간된 그의 유년 시절을 다룬 책에서 폭로돼 파장을 낳았으나, 그의 굳건한 입지를 흔들지는 못했다.

1982년 첫 남편인 울리히 메르켈과 이혼한 메르켈 총리는 1998년 화학과 교수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으나 자녀는 없다.

고전음악팬으로 바이로이트 오페라 축제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며 휴가 때는 알프스 산중에서 하이킹을 즐긴다.

집에서는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등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을 잃지 않는 것도 인기의 비결이다.

(베를린연합뉴스) 박창욱 특파원 pcw@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