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부터 일본언론의 뉴스 메이커로 각광 받아 온 세사람이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시마즈제작소의 다나카 고이치 부장 및 어린 딸을 북한에 납치당한 요코다 메구미양의 부모다. 학사출신의 샐러리맨 연구원에서 일본 열도의 영웅으로 떠오른 다나카 부장의 소식은 언론의 최고 인기메뉴가 됐다. 서민적 체취와 자신을 낮추는 겸손으로 일본국민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그는 8일 밤 스톡홀롬에서 가진 연설에서도 또 한번 연구를 같이 한 4명의 동료에게 공을 돌렸다. 노벨상을 안고 돌아 온 후에도 그의 이름 석자는 일본언론의 키워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시마즈제작소엔 그와의 인터뷰,강연을 기다리는 신청이 무려 4백건 가까이 밀려 있다. 북한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며 흘리는 요코다양 부모의 눈물과 호소는 보통 일본인들의 눈시울을 적시며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들고 있다. 해결을 촉구하면서 '북한에 대한 투쟁'을 다짐하는 노부부의 한과 응어리는 일본사회가 납치피해자 문제에 가려진 다른 그늘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엄청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 노부부가 가는 곳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수많은 군중이 몰리고,취재경쟁이 뜨겁게 불붙고 있다. 납치피해자 문제를 냉정한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목소리는 북한을 향한 비난과 저주에 파묻히고,언론은 오늘도 노부부의 비통한 목소리를 주요기사로 올리고 있다. 환희와 희망을 안겨 준 영웅의 이야기는 수십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교훈'이다. 반인류적 범죄집단을 비판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것은 백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사람의 입만 주시하며 뉴스 앵글을 한곳으로 고정시킨 언론의 시각은 나약하고 편협해진 오늘의 일본을 대변하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백척간두에 서 있다는 경제는 달라진 게 없고,빗발치는 비판에도 고이즈미 정권이 거침없이 이지스함 해외파견 결정을 내린 것이 불과 수일 전의 일이다.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서점가를 뒤덮었던 자기반성의 목소리와 내일을 대비하려는 서적,그리고 아젠다도 올해는 자취를 감췄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