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 참사의 범인들이 이슬람 및 중동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속속 밝혀지면서 중동이 얼어붙을 듯한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다. 11일 미국의 테러참사가 발생한 직후 중동국가들이 보인 반응은 두 가지였다. 이라크를 제외한 중동 각국 지도자들은 일제히 이번 사건을 용납할 수 없는 반인도적 행위로 강력히 비난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물론 미국이 테러지원 국가로 지목해온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까지도 테러 비난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일반 시민과 언론들의 반응은 이와 달리 크게 환호하는 분위기였다. 팔레스타인은 물론 레바논과 이집트 등에서 축하시위가 벌어지고 시위대들은 이번 사건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데 대한 '신의 응징'이라고 주장했다. 직접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아랍인들의 정서도 정부의 테러비난 성명보다는 시위대들의 축하분위기에 훨씬 가까운 편이었다. 아랍권의 대다수 언론들도 테러행위 자체를 비난하면서도 이번 사건의 본질이 '미국이 이스라엘을 맹목적으로 지지해온데 따른 대가'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미국의 테러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슬람 및 아랍인들의 가담의혹이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중동 이슬람국가들은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환호 분위기도 보복에 대한 우려로 돌변하고 있다. 특히 유력한 테러용의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이 머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라덴 인도의사를 밝히며 테러연루 사실을 거듭 부인하고 있는 것은 물론 테러용의자들의 국적이 밝혀진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등도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끊임없는 테러지원 의혹을 받아온 리비아와 이라크, 이란 등에도 긴장과 불안이 교차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의 일부 신문사들은 이미 미국의 보복 공격에 대비, 이스라엘 주재 특파원들에게 시리아, 이집트, 걸프국가 등으로의 출장 준비 지시를 내렸다고 이스라엘군 라디오방송이 12일 보도했다. 미국이 어떤 나라와 단체를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할 지는 모르지만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된 이번 사건에 대한 보복이 전쟁 이상의 가혹한 강도로 감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중동의 긴장감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중동 아랍국가들은 임박한 미국의 보복 공격 이후에도 이번 사태는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싸움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울 경우 팔레스타인과 아라파트 수반의 반이스라엘 봉기(인티파다)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정부의 강경노선은 더욱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랍권과 팔레스타인은 떼어놓을 수 없는 '아랍형제'라는 점이다. 아무리 미국과 이스라엘이 반테러의 기치 아래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잠재우려 해도 아랍권과 팔레스타인간의 동질감은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아랍권과 이스라엘간의 괴리와 불신은 갈수록 커져 더욱 큰 분쟁과 갈등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미국은 지금 무고한 시민들을 상대로 자행된 비겁한 테러에 대해 강력하고 신속한 보복을 취하라는 압력과 의무감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테러라는 '악'을 응징하려는 미국의 보복공격은 이번 사건을 불러온 해묵은 중동분쟁의 불씨를 제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또다른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아랍 및 이슬람권의 증오와 적개심을 부채질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이기창특파원 lk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