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다음달 만난다. 소프트뱅크 산하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두고 긴밀하게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인수합병(M&A)보다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한 지분 투자 논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손 회장은 이 부회장을 만나 ‘특별한 제안’을 하기 위해 다음달 한국을 찾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손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삼성전자와 ARM 간 제휴를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소프트뱅크 대변인도 “손 회장이 삼성과 ARM 간 전략적 협력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ARM은 반도체 생산의 가장 핵심적인 설계 자산(IP)을 만드는 세계적인 팹리스업체다. ARM 최대 주주는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소프트뱅크 75%, 비전펀드 25%)다.

손정의 회장
손정의 회장
업계에선 손 회장이 IPO를 도와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그는 ARM에 대한 엔비디아의 M&A가 무산된 뒤 뉴욕과 런던 증시를 겨냥해 내년 3월 IPO를 추진 중이다. 지분 분산과 자금 수혈을 위해 프리IPO에 나섰을 때 삼성전자의 참여를 부탁할 것으로 보인다.

ARM은 매력적인 기업이지만, 당장 인수하기엔 가격이 만만찮다. 2016년 ARM을 314억달러(약 44조원)에 사들인 일본 소프트뱅크는 엔비디아의 ARM 매각 불발 이후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인수가는 400억달러(약 56조원)에서 660억달러(약 93조원)까지 치솟았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은 125조원(2분기 기준)이어서 인수할 여력은 있지만, 그 정도 자금을 투입할 정도로 가치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며 “일부 지분을 투자하는 수준에서 전략적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 추정에 따르면 ARM 매출은 2019년 약 2조1200억원, 2020년은 2조2000억원 수준이다.

‘ARM 통매각’을 반대하는 글로벌 반도체업계의 반발도 M&A가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미국 퀄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은 엔비디아의 ARM 인수 반대에 목소리를 높였다. 반도체산업에서 특정 기업이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해 경쟁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반도체업체 대부분이 ARM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반도체 칩을 재설계·생산한다.

이 부회장과 손 회장이 만나는 것은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회동에선 ARM 관련 협력 외에도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 전장 등 여러 공통 관심사에 대해 폭넓은 대화가 오갈 전망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