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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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계속 뛰는 데도 외국인이 꾸준히 주식을 사는 건 이례적이네요.”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최근 외국인 수급을 두고 한 말이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 중반까지 치솟는 상황에서도 외국인의 매수세가 두 달째 이어지자 증권가에서도 원인을 둘러싼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이 저평가됐다는 인식과 함께 저가 매수를 노린 외국계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달러로 환산한 코스피지수는 2100선 수준까지 내려가 매력적인 가격대라는 설명이다.

◆두달새 5조원 순매수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초 이후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5조747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지난달에 2조3215억원, 이달 들어 2조7531억원을 사들였다. 외국인이 두 달 연속 순매수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11~12월 이후 처음이다.

특징적인 것은 원달러 환율이 지난달 초 1298원에서 이달 23일 장중 1345원 이상으로 치솟았음에도 외국인이 꾸준히 주식을 사들인다는 점이다. 통상 환율이 오를 때 외국인들이 환차손을 우려해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2거래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16거래일 동안 유가증권시장에서 모두 순매수했다.

◆달러 환산 코스피 2100 수준

최근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의 저평가 매력 △최저 수준까지 내려간 외국인 지분율 △달러 외 전반적인 통화 약세 △미중 갈등 수혜 기대 등을 꼽았다.

한국경제신문이 현대차증권에 의뢰해 코스피지수를 달러로 환산해 분석한 결과 해당 수치는 2019년 12월과 유사한 수준으로 파악됐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2100~2200선에서 움직였다. 현재 코스피지수가 2400~2500 수준이지만 외국인이 체감하는 지수는 그보다 훨씬 낮은 셈이다.
달러 강세에 저평가 매력 커지는 코스피지수 / 자료=현대차증권, 블룸버그
달러 강세에 저평가 매력 커지는 코스피지수 / 자료=현대차증권, 블룸버그
국내 증시가 낙폭을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해 외국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저렴한 가격대라는 분석이다. 외국인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 한국 주식을 매매하는 만큼 달러 기준으로 지수 수준을 파악한다. 달러 강세로 인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한국 주식을 살 수 있게 된 셈이다.

앞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달러 환산 코스피지수가 일반 코스피지수보다 16%포인트 이상 저평가된 바 있다. 이듬해 환율 안정과 외국인의 폭발적인 매수세에 힘입어 국내 증시는 급반등했다. 외국인은 2009년 국내 증시에서 32조3864억원을 순매수했고 그해 코스피지수는 49.65% 뛰었다.

외국인 지분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간 점도 매수세를 뒷받침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외국인이 보유한 국내 주식 시가총액은 622조1264억원(지난 24일 기준)으로 전체 국내 증시 시총 대비 27.1% 수준이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외국인 지분율은 32%대에서 움직였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외국인 지분율은 2008~2009년 이후 최저치 수준으로 내려온 상태”라며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실상 더 이상 팔 만한 매물이 남아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긴 했지만 엔화, 유로화 등 다른 통화 가치가 더 크게 빠지면서 원화가 상대적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원인에는 급격한 유로화 약세와 그로 인한 달러인덱스 상승 영향이 크다”며 “달러 인덱스와 원달러 환율 추이를 보면 달러 강세 폭보다 원달러 환율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투자 성격 자금 유입

최근 외국인 매수의 또 다른 특징은 장기 투자 성격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1조7300억원, 3850억원어치의 국내 주식을 순매수했다. 미국은 전체 외국인 자금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지역이다. 세계 7대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이 포함된 싱가포르계 자금도 2개월 연속 순유입됐다.
미국·싱가포르 자금 순유입 / 자료=유안타증권
미국·싱가포르 자금 순유입 / 자료=유안타증권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세계적으로 신흥국 주식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가고 있음에도 국내 주식에 돈이 유입됐다는 점은 그만큼 한국의 투자 매력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며 “특히 공모펀드와 기금 중심인 미국계 자금의 귀환은 외국인 수급에 긍정적 신호”라고 말했다.

미국계 자금 유입을 두고 일각에선 미중 갈등에 따른 수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추측도 나온다. 나정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미중 갈등에 따른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수혜국”이라며 “IRA는 중국에서 생산된 소재와 부품을 배제하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한국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 초 이후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에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2차전지 관련주가 포함됐다.

◆"추세적 매수 위해선 환율 안정돼야"

다만 추세적 반등을 얘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한 목소리도 만만찮다. 최근 외국인의 매수세가 대부분 쇼트커버링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쇼트커버링이란 공매도한 주식을 되갚기 위해 매수하는 것을 말한다. 증시 반등 시점에서는 공매도 포지션이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쇼트커버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유가증권시장 공매도 잔액은 지난달 21일 11조5136억원에서 지난 22일 10조5429억원으로 감소했다. 전체 공매도 거래금액에서 외국인의 비중이 70%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외국계 쇼트커버링 물량이 대거 유입된 것으로 해석된다.

결국 외국인이 추세적으로 매수세로 전환하기 위해선 환율이 안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 확대 우려로 미국 10년물 채권 금리가 다시 상승 전환하고 원달러 환율도 올라가고 있다”며 “잭슨홀 회의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후로 Fed의 태도가 바뀐다면 다시 금리가 떨어지고 외국인의 매수세도 탄력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형교/심성미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