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월10일 오전 9시14분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 시장은 여전히 ‘토종 투자은행(IB)’의 불모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이 시장의 1~10위 자리를 모두 외국계 IB에 내준 것으로 집계됐다.

10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HSBC는 지난해 44억8900만달러어치(인수물량 기준)의 한국 기업 해외채권 발행을 주관해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씨티글로벌마켓증권, 크레디아그리콜, BNP파리바, UBS가 그 뒤를 차지하는 등 외국계 IB들이 1위부터 10위까지를 독식했다.

국내 IB 중 20위 안에 든 곳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12위)이 유일했다. 산은은 한국 기업의 해외 달러채권 부문에서 8위를 기록했다. 국내 IB 중 최초로 이 부문에서 10위권에 진입했다.

외국계 IB들은 오랫동안 쌓은 경험과 실적, 풍부한 해외 전문인력, 방대한 영업망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국내 IB들과 비교하면 채권 판매 능력 등에서 한참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기간 이 같은 인식이 굳어지면서 한국 기업들은 해외채권 발행 주관사를 대부분 외국계 IB로선정하고 있다.

국내 금융투자업계에선 외국계 IB와의 실력 격차가 더욱 벌어지기 전에 국내 IB들이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내 민간 금융회사 중 지난해 한국 기업의 해외채권 발행을 맡았던 곳은 미래에셋대우(1건·6000만달러)와 신한금융그룹(1건·2500만달러) 두 곳뿐이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업 면허도 없는 코메르츠방크, 토론토도미니온은행, 호주뉴질랜드은행(ANZ) 등은 매년 이보다 많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반면 중국은 오래전부터 자국 IB 육성에 공들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이 역외채권을 발행할 때 의무적으로 주관사단에 자국 IB를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중국계 IB가 글로벌 자본시장에 진출할 길을 열어주고 있다. 지난해 중국 기업 역외채권 발행주관 1위는 중국은행이었으며 그 외에 HSBC, 하이퉁증권, 공상은행, 중신은행, 궈타이쥔안증권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IB들이 해외 업무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지만 국내 발행 기업들이 이들을 쓰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공기업만이라도 해외채권 발행 주관사단에 토종 IB를 꾸준히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