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업계에 수수료 인하 경쟁이 시작된 건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엔 그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펀드매니저의 운용 역량에 따라 수익률이 좌우되는 액티브 주식형펀드 중 상당수가 부진한 성과를 냄에 따라 ‘수수료를 아껴 수익률을 높여 보자’는 인식이 투자자들 사이에 확산된 영향이다.
운용보수 안 받는 '로봇' 부상… 설 자리 잃는 펀드매니저들
운용업계도 이 같은 투자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수수료를 낮춘 다양한 펀드들을 내놓고 있다. 액티브 주식형 펀드에 비해 인건비가 덜 드는 로보어드바이저(인공지능 로봇을 활용한 투자자문 서비스) 펀드 중에선 ‘운용보수 0원’인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총보수 사상 처음 1% 아래로

1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자산운용업계의 국내 주식형펀드 평균 운용보수는 연 0.406%다. 지금은 이 수치가 연 0.3%대로 떨어졌을 것으로 자산운용업계는 추정한다. 2010년 말 연 0.650%이던 평균 운용보수는 7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운용보수란 펀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굴려주는 대가로 자산운용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다.

은행·증권사 등이 펀드를 팔면서 떼어가는 판매보수는 따로 있다. 운용보수와 판매보수를 합한 총비용은 사상 처음으로 0%대로 하락했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10월 말 기준 총비용은 연 0.92%로, 올 들어 0.13%포인트 떨어졌다.

최근 자산운용업계에서 보수 인하 경쟁을 주도하는 건 상장지수펀드(ETF)다. 한화자산운용은 ‘ARIRANG200’ ETF의 총보수를 지난달에 종전 연 0.14%에서 연 0.04%로 인하했다. 국내 상장된 ETF 가운데 가장 낮다.

1000억원의 펀드를 굴려도 운용사가 가져가는 몫은 직원 한 명의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4000만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올해 한화자산운용을 포함해 KB자산운용과 키움자산운용 등 세 곳이 ETF 보수를 낮췄다.

◆수수료 0원 공모펀드도 줄이어

투자자들이 펀드에 가입할 때 운용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성과가 나면 이 중 일부를 가져가겠다는 펀드들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들이 대표적이다. 대신자산운용은 로보어드바이저 펀드인 ‘대신로보어드바이저 자산배분성과보수’를 출시하면서 운용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수익의 10%를 성과보수로 가져가기로 했다.

펀드에서 마이너스 수익이 날 경우 한 푼도 가져가지 않는다. 판매사와 협의해 판매보수도 업계 최저 수준인 0.1%로 낮췄다. 조윤남 대신자산운용 마케팅·운용총괄 전무는 “1억원을 30년 동안 투자하는데 연평균 4%의 수익률을 낸다고 가정할 경우 수수료를 1%포인트씩만 아껴도 8000만원의 수익을 더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공모펀드 수익률이 부진하기 때문에 투자자들로선 수수료라도 아껴 추가 수익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로보어드바이저 펀드인 ‘에셋플러스알파로보글로벌그로스성과보수’도 운용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성과에 대해서만 보수를 받고 있다.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 펀드는 연 0.2%의 운용보수만 받는다. 수익률도 양호하다. 최근 3개월 동안 미래에셋AI스마트베타와 대신로보어드바이저 자산배분성과보수 펀드는 각각 5.59%와 3.80% 수익을 올렸다.

◆저수수료 펀드로 넘어간 주도권

자산운용업계에선 올 들어 펀드 시장 주도권이 보수가 비싼 액티브펀드에서 싼 패시브펀드로 완전히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정보제공업체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액티브 주식형펀드 전체(533개) 설정액은 25조2738억원으로 23.94% 감소했다. 15일 기준 인덱스 주식형펀드 전체(286개) 설정액은 16조8777억원으로 13.22% 증가했다.

아직 투자 규모가 미미한 로보어드바이저 펀드가 대중화될 경우 주도권이 또 한번 넘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공지능이 운용을 주도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이론적으론 펀드매니저를 한 명도 쓰지 않는 게 가능하기 때문에 수수료를 인덱스펀드보다 더 낮출 수 있다.

운용업계에서 최근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를 가장 강하게 밀고 있는 대신자산운용의 설정액은 작년 말 5조844억원에서 15일 5조5848억원으로 9.84% 늘어났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