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상승, 잘나가는 증시 발목 잡나
원·달러 환율이 4개월 만에 1150원을 넘어서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이후 이달까지 8개월 연속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을 순매수하고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의 ‘바이 코리아(buy Korea)’ 행진이 반년 넘게 이어진 데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 올 들어 하향 안정세를 보인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지수 간 상관계수는 -0.6(음의 최댓값 -1)이다. 환율과 코스피지수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다.

이 증권사 박정우 연구원은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다 보니 원·달러 환율 변동에 따라 주가가 등락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200원 선을 넘어서면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이 증시에서 대거 자금을 뺄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한진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들어 외국인은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국면에서 차익 실현 매물을 쏟아냈다”며 “하반기에 환율이 급격하게 오르진 않겠지만 증시 변동성이 커졌다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이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내고 있는 만큼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윤 센터장은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기업 실적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는 추세인 데다 최근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북핵’이라는 단기 악재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 외국인 자금 유출을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환 NH투자증권 연구원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 기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외국인이 자금을 뺄 유인은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강(强)달러(원화 약세)’는 채권시장에도 악재 요인이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조1653억원어치의 원화 채권을 순매도했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지난해 12월 이후 이어져온 외국인의 원화 채권 순매수세도 8개월 만에 순매도세로 돌아서게 된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