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년 넘은 사외이사·감사, 경영 감시 못한다?
마켓인사이트 4월15일 오전 11시14분

현대미포조선은 지난달 주주총회에 앞서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를 두 차례나 교체했지만 결국 사외이사 한 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국민연금 자산운용사 등이 나서 이사 후보의 독립성에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사, 감사 선임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당연한 권리라는 의견과 기업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한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국민연금 “11년 이상은 안 된다”

15일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안건은 총 270건(반대 비율 9.11%)이었고 이 중 이사·감사 선임 반대 건수는 191건으로 전체 반대표의 7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감사 선임에 반대하는 이유로는 과도한 겸직, 이사회 참석률 저조 등이 꼽혔다. 특히 장기 연임을 이유로 반대하는 경우가 50건으로 가장 많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오랫동안 회사 경영에 조언을 해주던 사외이사가 이번 주총에선 연임을 포기했다”며 “국민연금과 기관투자가들의 반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행사할 때 ‘10년 초과(11년 이상) 사외이사·감사에 대해선 반대한다’는 지침을 세워놓고 있다. 김성민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장(한양대 교수)은 “10년 넘게 같은 회사에서 사외이사나 감사 역할을 하다 보면 경영진과 유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감사와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장기 재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41년 넘긴 감사도 재직 중

한 상장사에서 11년 이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사외이사와 감사(감사위원 포함, 사외이사 중복은 각각 집계)는 286명에 달한다.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공인회계사회와 공동으로 지난 3월 말 기준 1829개 상장사의 사외이사 및 감사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상장사 사외이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3.5년이고 감사는 4년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근속연수는 평균의 세 배를 넘는다. 가장 근속연수가 긴 감사는 KCTC의 이모씨(91)로 무려 41년을 재직했다. 사외이사 중에선 신영와코루의 일본 와코르 측 인사 요시카다가 22년간 재직해 최장수를 기록했다.

장기 재직한 사외이사·감사 중에는 회사에서 퇴직 후 ‘승진 형태’로 자리를 맡았거나 최대주주와 인척 관계인 경우가 많았다. 강선·케이블 제조업체인 만호제강의 상근감사 정모씨(79)는 만호제강에만 50년째 재직했다. 20년간 직원으로 일한 뒤 나머지 30년을 감사로 일하고 있다. 골판지업체인 태림포장의 비상근감사 자리를 32년째 지키고 있는 조모씨(80)는 이 회사 회장의 배우자다.

◆“전문성 인정해야” vs “감시 제대로 못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일명 ‘붙박이 사외이사·감사’를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반영하는 일종의 투자지표로 여기며 기업들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경제계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회사 사정에 어두운 새 사외이사와 감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해당 기업에 작지 않은 부담”이라며 “장기간 재직하면 전문성이 높아져 오히려 주요한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재직했다고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사외이사와 감사가 장기간 재직하게 되면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본연의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진다는 의견도 있다. 유정민 공인회계사회 연구위원은 “장기 재직하는 사외이사·감사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없는 인척관계이거나 독립성이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며 “이런 기업들은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하수정/서기열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