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엔화 약세가 또다른 변수로 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이 총선(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함에 따라 엔화 약세 추세가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런 우려가 반영되면서 코스피지수는 17일 0.6% 하락 마감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엔화 약세가 국내 증시에 마냥 부정적인 영향만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종별로는 내수소비재와 내수서비스업종의 경쟁력은 더욱 강화되는 반면 관광 및 여행업종과 건설업종,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수출업종은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증시에 큰 부담 아니다

엔화 약세는 증시엔 부담이다.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일본 상품과 경쟁관계인 상품들의 상대적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의 경험일 뿐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자동차를 비롯한 해당 분야에서 국내 업체의 경쟁력이 강화돼 어느 정도의 엔화약세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증시 전체적으론 긍정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엔화에 투자했던 글로벌 자금이 빠져 나와 원화 강세를 예상하고 국내에 몰릴 수도 있어서다.

이 경우 원화는 강세를 보이겠지만 국내 증시는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상승세를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엔캐리트레이드도 일어날 수 있다.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다른 나라 통화를 갖고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호텔·건설업종 ‘흐림’

호텔 카지노 화장품 등 일본인 관광객 수가 중요한 업종은 엔화 약세의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10월 방한한 일본인은 26만9732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0.7% 급감했다.

건설장비와 해외건설 및 플랜트 업종도 피해가 예상된다. 중동지역 석유화학 플랜트나 동남아 등지 건축 및 인프라 건설 입찰에서 일본 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수출기업 중 가장 큰 타격이 우려되는 업종은 자동차산업이다. 조용준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엔화 약세 국면을 활용해 부품을 본국에서 조달할 것”이라며 “여기서 아끼는 자금을 마케팅으로 돌려쓰면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우려했다. 반면 “현대·기아차의 해외 생산량이 50%를 넘을 정도로 글로벌화돼 있고 이미 2008년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이던 시절을 겪은 경험도 있어 엔화 약세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송상훈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이란 의견도 있다.

○내수업종은 ‘맑음’

엔화 약세는 국내 수출과 경기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더라도 원화 강세가 겹쳐 투자심리를 위축시킬 가능성은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내수주로 관심을 돌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 점에서 식품 패션 종이 등 내수소비재, 은행 보험 유통 등 내수서비스산업이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보험 증권 기계 등의 업종은 지난 세 번의 엔화 약세 기간 동안 모두 강세를 보였고 코스피지수와 비교해서도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의 엔화 약세 기간이었던 2006년 5월부터 2007년 7월까지 기계업지수는 코스피 대비 52.1%의 초과수익률을 기록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