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ㆍ건설 등 전업종 상승 … 839개 종목 상한가 '물반 고기반'

하루 종일 증권사 객장 시세판이 가을 단풍을 연상시키는 붉은색으로 뒤덮였다. 30일 한국과 미국이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약을 체결하자 '한·미 통화동맹'에 힘입어 국내 증시가 '상승 반전 드라마'를 연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다. 얼어붙었던 투자심리도 한결 진정됐다.

이날 국내 증시는 말 그대로 폭등장이었다.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115.75포인트(11.95%) 급등한 1084.72로 마감하며 1100선에 육박했고 코스닥지수도 11.47% 오르면서 296.05로 장을 마쳤다. 유가증권시장 375개,코스닥시장 464개 종목이 상한가로 직행했다.

장 초반 양 시장에 모두 발동된 '상승 사이드카'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시간이 갈수록 급등세로 치달았다. 송정환 현대증권 도곡지점 팀장은 "지점으로 걸려오는 고객들의 목소리가 한층 밝아졌다"며 "일부 고객은 대폭락장이 이제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과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중국 중앙은행의 추가 금리 인하 소식,한·중·일 통화스와프 규모도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감,키코(KIKO·통화옵션파생상품) 손실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유동성 지원 등 호재가 겹치면서 국내 유동성 위기가 진정 국면을 보이고 있다는 안도감이 시장을 지배했다.

고삐 풀린 듯 급등하던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자 오랜만에 항공과 여행,유틸리티 등 환율 하락 수혜주들이 각광받았다. 원유 하락세까지 겹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상한가로 치솟으며 3만2359원과 3425원으로 장을 마감했고 하나투어 모두투어 롯데관광개발 등 여행주와 면세점을 운영하는 호텔신라도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CJ제일제당도 상한가로 오르며 환율 수혜주로 꼽혔다. CJ제일제당은 연간 원재료 수입만 8억5000만달러,외화 부채가 4억8000만달러에 달해 환율 상승에 취약한 기업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석탄 LNG 중유의 구입 단가 하락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한국전력이나 현대제철도 가격제한폭까지 주가가 급등했다.

전 업종지수가 상승한 가운데 특히 낙폭이 컸던 철강·금속 업종지수가 무려 14.68%나 뛰어오르는 등 건설(14.28%) 기계(13.52%) 운수장비(13.41%) 전기·전자(13.31%) 등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C&그룹 워크아웃설 여파와 PF 부실 우려감에도 불구하고 신한지주가 13.79% 상승하는 등 KB금융(9.38%)과 우리금융(0.82%)을 비롯한 은행주도 모두 올랐다.

키코 피해주들의 날이기도 했다. 원·달러 환율이 폭락세를 보인 데다 정부와 은행권의 지원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무더기로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성진지오텍 디에스엘시디 제이브이엠 씨모텍 심텍 우주일렉트로닉스 태산엘시디 등이 동반 상한가를 기록했고 엠텍비젼과 사라콤은 각각 4.34%,3.67% 올랐다.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로 급락한 점이 키코 피해주들의 숨통을 터줬다. 환율이 하락할수록 키코 피해 규모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날 키코 피해주에 대한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소식이 추가로 전해지면서 주가에 탄력을 얹어줬다. 은행권은 1차 유동성 우선지원 대상 29개 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별 평가와 보증기관 심사 등을 거쳐 모두 24개사에 대해 총 343억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완료했다.

이날 정영훈 한화증권 기업분석센터장은 "하루하루 증시 역사를 새로 쓰는 것 같은 드라마 장세였다"며 "일단 국내 증시 안정의 전제조건인 미국·유럽·아시아 증시의 동반 안정화와 외환 기근 현상이 완화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급락 후 급등할 때는 특별한 이유를 찾기보다 낙폭이 컸던 종목은 일단 무차별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며 "투자심리가 공포(패닉)에서 벗어나면 이후 경기여건이나 실적 모멘텀 등을 살피며 '옥석 가리기'가 이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반등랠리 지속에 대해선 신중한 견해도 나온다.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쏟아져 나온 각종 대책들이 하루에 다 반영된 것 같은 느낌"이라며 "앞으로는 오늘 같은 큰 폭의 상승세보다 점진적인 반등이 전망되며 실물경기 침체 우려 등 '후속 카드'가 별로 좋지 않아 상승폭도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재훈 대우증권 연구원도 "환율 하락으로 외국인의 매도 강도는 줄겠지만 연기금을 제외한 내부의 강력한 수급 주체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혜정/조진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