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는 없고 컴퓨터만 있다."

주식 현물시장이 선물과 연계된 프로그램매매에 맥없이 휘둘리는 일이 되풀이되자 증권가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프로그램매매란 컴퓨터에 미리 매수 매도 종목을 입력해놓고 한꺼번에 주문을 내는 것.매매현장엔 이런 컴퓨터만 보일뿐 경제여건을 따져 진검승부를 거는 투자자를 찾아보기 힘들다.

투신사 증권사 펀드매니저조차 팔장을 끼고 선물과 연동된 프로그램매매만 들여다 볼 뿐이다.

"선물상승->매수차익거래 발생->주가상승" 또는 "선물하락->매도차익거래 발생->주가하락"등 꼬리(선물)가 몸통(현물)을 흔드는 장세가 최근 며칠째 되풀이되고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데다 증시수급 기반이 워낙 취약한 게 원인이다.

증권업계는 선물과 옵션의 만기일이 겹치는 오는 14일까지 이같은 ''컴퓨터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3천억원에 달하는 프로그램매수잔고의 청산여부가 단기 변수로 떠올랐다.

◆선물시장 뒤흔드는 외국인=선물시장이 외국인에 농락당하고 그 결과 현물주가마저 요동치는 교란장세에 투자자들은 극도로 지쳐있다.

지난 6일이 대표적인 케이스.오전에는 외국인의 대규모 선물매수에 따른 프로그램매수에 힘입어 주가가 24포인트 가까이 급등했지만 오후들어 외국인이 매도우위로 전환,프로그램매수세의 약발이 떨어지자 주가는 강보합까지 되밀려버렸다.

7일에도 외국인(매수)과 개인(매도)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외국인의 승리로 끝났다.

매매비중이 10%도 되지 않는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한 까닭은 국내 투자자들의 취약성 때문으로 지적된다.

매매비중의 40%를 차지하는 투신 증권 등 기관투자가들은 현물과 연계한 차익거래 수단으로만 선물을 주로 활용한다.

투기적인 매매나 적극적인 매도헤지 및 매수헤지에 나서는 경우가 드물다.

개인투자자들은 매매비중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대부분 순간 포착을 노리는 데이트레이더이며 모래알 같은 성향 때문에 ''세력화''되기 힘들다.

그 결과 장 마감 무렵 외국인이 집중 공격하면 쉽게 손을 들어버리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의미심장한 외국인 선물순매수=선물만기일(14일)이 5일(거래일 수 기준)밖에 남지 않았는 데도 외국인의 선물 누적순매수 규모는 1만계약을 넘고 있다.

배경이야 어떻든 규모로 볼 때 의미심장한 신호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최권욱 코스모투자자문 사장은 "지난 98년말 주가가 회복세로 돌아설 당시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먼저 움직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외국인의 지속적인 선물 매수세와 그에 따른 콘탱고(선물 고평가)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고 말했다.

연말 유동성 장세를 예상한 선취매라는 분석도 나오고 대형 호재가 임박했다는 관측도 있다.

동부증권의 김성노 투자전략팀장은 지난 6일 외국인의 선물 5천계약 순매수에 대해 "98년 이후 외국인이 선물을 4천계약 이상 순매수한 경우는 모두 10회였으며 주가에는 단기호재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지난 6일처럼 신규매수에 의한 대규모 순매수는 대세상승기에만 있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근 외국인의 선물매매가 현물매매와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투기거래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 98년말∼99년 외국인의 선물매매는 현물과 연계한 매매가 주류를 이뤘다.

즉 현물주식을 매도하기 전에 선물을 매도하거나 현물주식을 매수하기 전에 선물을 매수했다는 것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