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수십 년의 탤런트 최불암(64)씨.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지만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드라마가 있다. 정주영 현대그룹 전 회장 모델의 천태산 역을 맡은 MBC 특별기획 드라마 '영웅시대'도 그 중 하나가 될 듯하다. 이는 그와 정 회장의 각별한 인연뿐 아니다. 드라마를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려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웅시대' 주인공들의 중·장년기를 그릴 해외촬영이 이뤄지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그를 만났다. 1960년대의 해외 건설공사 현장을 촬영하러 이곳에 온 그는 어려운 촬영 여건에서 후배 연기자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사실 처음 제의가 왔을 때는 안 하려고 했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안 따라준다"며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는 '영웅시대'와 천태산 역에 대한 애정과 의욕이 진하게 묻어나왔다. "어려운 역사를 겪어낸 선배들의 어려움, 인내와 끈기, 그리고 도전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영웅시대' 하나로는 안 되겠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과준비를 깨우치는 것은 방송 전체의 역할이다." 한국경제의 성공신화를 조명한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출발한 '영웅시대'는 지금까지 기대에 못 미치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드라마의 성패를 뛰어 넘어 방송의 존재 의의와 역할에 주목한다. '영웅시대'와 관련해 그는 "시청자들이 기대한 것은 다큐멘터리의 요소인데, 정작 다큐의 사실성이 결여되고 한 기업인의 고생담만 그려져 시청률이 떨어진 것 같다"고 진단하면서 앞으로 있을 변화를 예고하기도 했다. 사실 천태산 역에서 그보다 더 적격인 연기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천태산 변신은 그와 정 회장의 인연에서 출발한다.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그가 생각하는 정 회장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전원일기' 양촌리 김 회장에서 한국 경제를 일으킨 주역으로 거듭나면서 외모와 연기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극중 40대 후반 이후의 천태산 역을 연기하는 그는 "'전원일기' 이미지 때문에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지만 이제 진짜 세월이흘러 노인네가 됐다"고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머리도 검게 칠해야 하고, 연기하면서 악도 많이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드라마에서 보여줄 부분은 박정희 대통령과 5.16 혁명의 소용돌이 속의 기업인들 그리고 그 시대의 해외진출에 대한 모습들. 그 시대의 산증인이자 정 회장과인연은 외적 변화의 기본이 된다. 그는 "진실한 역사의 바탕에서 재미를 찾겠다"면서 "정 회장을 잘 아니까 그 의비범함을 드러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똑같이 흉내낼 필요는 없지만 '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으로 독특한 무언가를 표현하겠다는 설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던 성대모사가 아닌 그만의 특성과 의미가 묻어나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따로 '연구'가 필요없을 만큼 잘 아는 사이이지만 요즘도 때때로 정 회장에 관한 책을 읽으며 준비하고 있다. 끝으로 그는 "아이들이 볼 드라마가 요즘 너무 없다. 애들은 물론 어른이 볼 드라마가 돼야 한다"며 '영웅시대'에 거는 기대와 바람을 내비쳤다. 드라마 '영웅시대'의 영웅들을 통해 아이들이 닮고 싶은 주인공을 창조해내겠다는 의도이다. "새콤달콤한 사랑을 이뤄내는 주인공이 아니라 '일꾼'으로서 열심히 일하는 주인공이다. 얼굴 모양새를 닮고 싶은 것이 아니라, 좀 못 생기고, 나처럼 감자같이생겼어도 보통 사람이 닮고 싶은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호치민=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doub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