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비밀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연인들은 은밀한 언어로 그들만의 성(城)을 쌓는다. 그 성은 사회적 타산의 틈입을 거부한다. 오로지 순수한 영혼의 노크에만 문을 연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는 가장 비루한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키운 연인들의 이야기다. 전작 '초록물고기' '박하사탕'에서 절망을 보여줬던 이 감독은 '오아시스'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사랑의 본질을 극적으로 포착해 낸다. 주인공은 세상에 버려진 홍종두(설경구)와 한공주(문소리). 종두는 타인과 얘기할 때 다리를 지독히 떨거나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한다. 강간과 폭력 뺑소니 등의 전과 3범이기도 하다. 뺑소니는 형의 과실을 대신 뒤집어쓴 것이다. 강간과 폭력 전과는 그가 충동적인 성격임을 시사한다. 그의 미덕은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다. 그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에게서 처음으로 여인의 체취를 느낀다. 낡은 아파트에 자리 보전한 채 온몸을 뒤트는 공주에게 종두는 꽃을 보낸다. 이로써 '그들만의 비밀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사랑에 관한 작은 성찰들의 집합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사람들의 '첫사랑'은 공주와 닮아 있다. 처음에는 상대와 도저히 소통이 이뤄질 수 없을 듯싶다. 그러나 사랑은 열쇠처럼 소통 불가능한 것들을 열어 젖힌다. 두번째 만남 장면은 욕정이 사랑의 다른 표현임을 보여준다. 종두는 공주의 몸을 탐하지만 그녀는 완강하게 저항하다 혼절한다. 놀란 종두는 비로소 깨닫는다.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욕정은 허락을 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결국 종두는 공주를 '마마'로, 공주는 종두를 '장군'으로 섬긴다. '일하는게 부럽다'는 공주의 말에 종두는 카센터에서 일을 배운다. 세상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을 뚫고 그녀와 함께 바깥구경을 한다. 서로가 원하는 섹스를 다른 사람들이 강간으로 몰아붙이는 절정부는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연인들의 비밀스런 언어를 타인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을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가족들조차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 가족애의 허구이자 한계다. 때문에 사랑의 본질은 반사회성에 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할수록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진다. 삭막한 사회에서 서로에게 오아시스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공주 역의 문소리는 장애인의 불완전한 몸짓과 안타까움, 사랑의 열락을 잘 소화해 낸다. 종두 역의 설경구도 허둥대는 몸놀림, 불안정한 시선, 어눌한 말투로 사회 부적응자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15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 < 한마디 > '종두'役 설경구 '박하사탕 콤플렉스'를 벗고 싶었다. '박하사탕'에서는 강한 개성의 캐릭터였지만 '종두'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그는 세상을 단순화시켜 보고 말하고 행동한다. 그저 궁금해서 움직일 뿐 그의 행동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촬영과정은 짜증날 정도로 힘겨웠다. 이 감독과의 작업은 늘 그렇다. 나는 변태인 것 같다. 힘들어도 그와의 작업을 즐기니까. '공주'役 문소리 처음에는 '공주'역에 공포가 느껴졌다. 못하겠다고 달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걱정과 욕심을 던져버리니 마음이 비워졌다. 그곳에 내 몸에 맞는 뇌성마비 장애인을 찾아 넣었다. 안구의 위치가 다르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기울어져 보이기도,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한공주 역을 통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 팬터지와 현실의 경계, 미추의 경계들이 모호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