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입만열면 "죽을래"가 앞장 서고,뒤통수 가격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강깊이를 알아오라며 남자친구를 물속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소주 석잔에 대자로 뻗지만 언제나 "연속원샷"으로 털어넣는다.


툭하면 꽁초줏어라 자리양보하라 아무에게나 시비를 일삼는 이른바 "엽기녀".


하지만 뭇남자들의 눈을 죄 빼앗을만큼 미모가 빼어난 그녀는 실상 떠나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여린 심성에 만난지 백일 되는 날 남자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을 연출해주는 귀여운 여자다.


그 뿐이랴.정신이 멍해질만큼 화끈한 유혹도 할 줄 아는 깜찍한 여자.


그녀는 "엽기녀"라기 보다는 "너무 이쁜 그녀"이자,"사랑스런 그녀"다.


청춘스타 차태현.전지현 커플이 주연한 "엽기적인 그녀"(감독 곽재용.제작 신씨네)는 신세대의 취향과 기호에 맞아떨어지게 "제조"된 영화다.


대중문화의 지배코드가 된 "엽기"와 "순둥남과 터프걸"이라는 이색조합은 딱 요즘 아이들처럼 발랄하고 유쾌한 청춘영화를 탄생시켰다.


잘 알려졌듯 "엽기..."는 통신명 "견우74"로 더 유명한 김호식씨가 99년부터 통신에 연재했던 자신의 실제 연애담을 기초로 했다.


과격하지만 매력만점인 여대생 "그녀"와 복학생 "견우"가 벌이는 기상천외한 연애행각은 통신인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고 소설화를 거쳐 영화로까지 발을 넓혔다.


"엽기"가 기괴하고 음습한 느낌을 털어내고 파격적,또는 발랄한 정도의 귀여운 의미로 "전성"된 것도 이무렵부터다.


"엽기..."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그녀"가 저지르는 황당한 사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다.


술취한 여자가 지하철 옆승객에게 먹은것을 게워내고 아기를 떼러 가야 한다며 수업중 남자를 불러내는데서 누가 웃지 않겠는가.


사고뭉치인 여자친구의 뒷수습에 쩔쩔매는 착한 남자 견우도 연신 폭소를 끌어낸다.


차태현은 착하고 헌신적인 남자친구 견우를 생생하게 살려냈고 전지현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엽기녀를 똑 떨어지게 연기했다.


둘의 밀고당기는 사랑은 유치하지만 마냥 달콤했던 젊은시절 풋사랑의 기억을 더듬으며 뭉클함에 젖게하는 보너스도 안긴다.


아쉬움도 남는다.


언뜻 씩씩한 현대 여성처럼 묘사되는 "그녀"는 결코 "건강한 여성성"을 보여주지 못한다.


스크린속에서 귀여운 과장과 빛나는 유머감각으로 포장된 사랑스러움은 일상의 시선으로 본다면 "제멋대로형 공주과"의 치기어린 어리광이다.


독특한 캐릭터와 황당무계한 에피소드로 진행되던 작품은 후반부에서 구식 "멜로"로 흐르면서 리듬을 잃고 만다.


"엽기..."속의 진짜 엽기는 맥이 탁 풀릴만큼 억지스러운 두 남녀의 "엮기"일지 모른다.


27일 개봉.


15세.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