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은행 예금이 전월 대비 45조원 넘게 줄었다. 예금 금리가 하락한 여파다. 반면 연초 증시 반등에 힘입어 자산운용사에는 51조여원의 자금이 들어왔다.
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 수신(예금) 잔액은 전월 대비 45조4000억원 줄었다. 이 중 수시입출식예금이 59조5000억원 줄어 2002년 1월 통계 작성 이후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정기예금도 9000억원 줄었다. 지난해 11월 연 5%를 넘은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가 금융당국의 ‘예금 금리 인상 억제’ 조치 등으로 올 들어 연 3%대로 떨어진 여파다. 정부의 ‘예금 금리 찍어 누르기’가 은행권 자금 이탈의 한 요인이 된 것이다.
자산운용사 수신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12월에는 4조6000억원 줄었지만 지난달에는 51조4000억원 늘었다. 대표적 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는 39조원 늘었고, 주식형펀드(4조1000억원), 채권형펀드(2조원), 기타펀드(6조9000억원) 등도 증가했다.
지난달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 자금은 49억5000만달러 순유입됐다. 반면 차익실현 수요로 인해 외국인 채권투자 자금은 52억9000만달러 빠져나가며 2000년 이후 최대 순유출을 기록했다.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달 4조6000억원 줄었다. 2004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가계대출 중 기타대출이 4조6000억원 줄어 전달(-2조9000억원)보다 감소폭이 컸다. 예금 금리에 비해 대출 금리는 소폭 인하에 그치면서 대출 부담이 여전히 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명절 상여금으로 대출금을 갚는 등 계절적 요인도 더해진 것으로 분석했다. 주택담보대출은 작년 12월 3조1000억원 늘었으나 지난달에는 증감이 없었다. 전세자금대출은 1조8000억원 감소했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올렸는데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수신금리는 하락세다. 인터넷전문은행 정기예금 최고 금리는 연 4%대 중반에서 초반으로 내려왔고, 일부 저축은행에선 연 3%대 정기예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6일 금융권에 따르면 카카오뱅크는 지난 4일 정기예금(만기 1년) 최고 금리를 최대 0.6%포인트 내린 연 4.0%로 조정했다. 지난달 말 케이뱅크도 코드K 정기예금 최고 금리를 최대 0.3%포인트 낮춘 연 4.1%로 바꿨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이미 연 3%대 중반으로 내려갔다.가파르게 치솟았던 시장금리가 안정세를 나타낸 영향으로 풀이된다. 은행은 은행채를 발행하거나 예·적금 등 수신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은행으로선 고객에게 은행채보다 비싼 이자를 주면서 예금을 유치할 필요가 사라졌다.저축은행의 예금 금리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이날 기준 저축은행의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4.42%로 집계됐다. 금리가 정점을 찍었던 작년 11월 말(연 5.53%)보다 1.11%포인트 떨어졌다. 일부 저축은행의 예금 금리는 인터넷은행보다도 낮다. IBK저축은행은 지난 3일 ‘참기특한 정기예금’의 1년 만기 금리를 1.0%포인트 내린 연 3.7%로 조정했다. OK저축은행(OK정기예금), JT저축은행(정기예금) 등도 지난달 말부터 1년 만기에 연 3.9% 금리를 적용한다.파킹통장 금리도 낮아지고 있다. OK저축은행은 ‘OK읏백만통장Ⅱ’의 최고 금리(예치금 100만원 이하)를 연 5.5%에서 연 5.0%로 0.5%포인트 내렸다. 애큐온저축은행도 지난달 말 ‘머니쪼개기 통장’ 금리를 연 4.3%에서 연 4.1%로 조정했다.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지난해 11월만 해도 금리가 연 10%를 넘었던 농협·새마을금고·신협 등 상호금융권의 특판 예금 금리가 두 달 만에 연 5%대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다. 특판 경쟁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자 금융당국이 자제령을 내린 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대출 금리를 급격하게 끌어올리면서 ‘이자 장사’로 벌어들인 수익을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조합원 배당 재원’으로 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상호금융 예금이자도 하락세로 전환3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상호금융권 예·적금 금리는 작년 12월 연 5.17%로 전달(연 5.27%)보다 하락했다. 지난해 9월부터 11월 사이 연 3.38%에서 연 5.27%로 급등했다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 기간 신협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3.66%에서 연 5.39%로, 새마을금고는 연 3.71%에서 연 5.44%로 올랐다.작년 11월 말 상호금융권의 예금 확보 경쟁은 과열 양상으로 치달았다. 당시 동경주·남해축산·합천농협과 사라신협 등이 실수로 연 9~10%대 예·적금을 비대면으로 팔았다가 1000억원대 자금이 몰리자 해지를 읍소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역마진을 우려한 금융당국은 예·적금 특판을 자제해달라는 메시지를 각 상호금융중앙회에 전달했다.자제령 한 달 만에 특판 금리는 연 5%대로 급락했다. 지난 26일 경북 왜관신협은 연 5.61% 금리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특판을 출시했다.상호금융 관계자는 “저원가성 예금 비중이 높은 시중은행과 달리 상호금융권은 고원가성 예금 비중이 최고 90%에 달할 정도로 높아 수익성 악화를 막으려면 예금금리 인하가 불가피하다”고 했다.예금 금리 인하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는 게 상호금융권의 전망이다. 시중은행이 예금 금리를 내린 덕에 상호금융권이 높은 예금 금리를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정기예금은 만기가 길어질수록 금리가 내려가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민은행의 KB스타정기예금은 1년 만기 연 3.63%, 2년 연 3.36%, 3년 연 3.21%다. SBI저축은행의 정기예금도 1년 만기 연 4.3%, 2년 연 3.8%, 3년 연 3.6%다.대출 금리는 급등…배당 확대 조짐도?상호금융권은 예금 금리를 내리는 동안 대출 금리를 지난해 9월부터 12월 사이 연 4.64%에서 연 5.84%로 끌어올렸다. 특히 예금 금리가 하락세로 전환한 12월엔 은행 대출 금리(연 5.60%)를 역전했다. 특판으로 받은 높은 예금 금리 때문에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해 대출 금리를 인상했다는 게 상호금융권의 설명이다.상호금융권은 대출 금리를 올리고 예금 금리는 내리면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부실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는 대신 오는 3월 전국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조합원 배당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새마을금고에선 집단대출을 회수의문으로 분류하고 대손충당금을 더 쌓으라는 중앙회 요구에 반발해 대구 지역 12개 금고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일까지 벌어졌다.‘과도한 적립 요구’라는 지역조합 주장과 달리 상호금융권의 대손충당금 적립 비율은 2021년 12월 말 120.9%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하락세가 이어졌다. 작년 9월 말 기준 106.0%로 꾸준히 적립 비율을 늘려온 저축은행(120.7%)보다 낮아졌다. 이에 금융당국이 대손충당금을 늘리고 배당을 자제하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시장 금리가 하락하면서 한때 연 5%대를 넘겼던 주요 시중은행 예금 금리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시중은행 기준 연 최고 예금금리는 현재 4%대 후반에 그친다. 금리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만기 1년 이상 장기 예금에 가입해 금리 혜택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고 금리 연 4%대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시중은행에서 가장 높은 금리를 주는 정기예금 상품은 만기 1년 기준으로 연 최고 4.75%를 주는 대구은행 ‘DGB함께예금’이다. 수협은행의 ‘Sh첫만남우대예금’도 최고 연 4.7% 금리를 제공 중이다. 경남은행의 ‘올해는예금 특판’이 연 4.55%, 카카오뱅크 정기예금과 부산은행 ‘더 특판 정기예금’도 각각 연 4.5%와 연 4.45%를 제공해 상대적인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4대 시중은행 중에는 금리가 연 4%를 넘기는 예금이 없다.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29일 기준 대표 정기예금 상품 최고 금리는 만기 1년 기준 연 3.68~3.85%로 집계됐다. 은행별로는 하나(3.85%), 우리(3.77%), 신한(3.73%), 국민(3.68%) 등 순이다.예금금리가 하락하면서 금리 상승기에 역전됐던 장·단기 예금 상품 금리는 정상화되고 있다. 4대 은행 가운데서는 신한은행의 3년 만기 예금금리가 1년 만기 상품을 4개월 만에 추월했다. 신한은행의 ‘쏠편한 정기예금’ 3년 만기 금리는 이날 기준 연 3.8%로 1년 만기 금리(3.73%)보다 0.07%포인트 높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이 상품의 만기 1년 금리는 연 4.95%로 3년 금리(4.65%)보다 0.3%포인트 높았다. 나머지 세 은행의 장·단기 금리차도 0.07~0.35%포인트 수준으로 낮아졌다.통상 만기가 긴 상품은 만기가 짧은 상품보다 금리가 높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은행채 발행 중단 등으로 고객 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은행들이 고객 수요가 증가한 단기 예금금리를 올려 자금을 끌어오면서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를 넘어섰다. 역전됐던 금리 차가 좁혀지기 시작한 것은 예금금리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작년 11월 말부터다.자금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은행채 등 시장 금리가 하락 반전했고 특히 1년 만기 금리가 크게 떨어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년 만기 정기예금 준거가 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이달 27일 기준 연 3.720~3.740%로 지난해 11월(연 5.091~5.114%) 대비 상·하단이 1%포인트 넘게 줄었다.은행권은 예금금리가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향후 수신금리 인상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며 “금리 상승을 노린 단기 예금보다 만기가 긴 예금에 가입하는 수요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만기 2년 이상으로 잡아야”전문가들은 예금금리가 추가로 내리기 전 만기 2년 이상 장기 예금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최근 금리가 하락하고 있지만 아직 연 1%대를 보였던 예년 수준보다는 높아서다.구체적으로는 만기 2년 이상 장기 예금에 여유 자금을 주로 예치하되 일부는 여전히 금리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1년 예금에 분산할 것을 권했다. 오경석 신한은행 신한PWM 태평로센터 팀장은 “장기간 고금리를 유지하고 싶다면 자금의 70% 정도는 만기를 2년 이상 가져가는 것이 좋은 전략”이라며 “나머지는 만기 1년 예금에 들어 고금리와 일정 수준 유동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목돈을 장기간 예치하는 것이 부담된다면 만기 3~6개월 단기 예금을 이용해 예치 자금과 기간을 조절해도 된다. 박해영 하나은행 방배서래골드클럽 PB부장은 “만기가 짧은 상품 금리도 1년 만기 때와 이자 수준은 비슷하다”며 “향후 시장 흐름에 빠르게 발맞춰 예치금을 이동시키고 싶다면 일부 자금은 단기 예금에 맡겨 시장 기회를 엿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적금은 목돈 마련 용도로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박 부장은 “적금은 한 회당 납입금이 크지 않아 이자 수익을 올리기엔 부적합하다”며 “만기가 긴 상품에 가입해 예금에 넣을 목돈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