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그룹 계열 자율운항기술 전문업체인 아비커스와 SK해운 직원들이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대양횡단’에 성공한 LNG 운반선 ‘프리즘 커리지’호 조타실에서 AI 운항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자율운항기술 전문업체인 아비커스와 SK해운 직원들이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대양횡단’에 성공한 LNG 운반선 ‘프리즘 커리지’호 조타실에서 AI 운항 기기를 점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제공
‘동원참치’로 유명한 동원F&B는 통조림 속에 섞여 들어가는 생선 뼈로 골머리를 앓았다. 3단계 수작업으로 살코기를 발라내고 금속 검출기, 엑스레이로 검사까지 했지만, 종종 뼈를 놓치는 일이 생겼다. 현장 직원들은 인공지능(AI)에서 해법을 찾았다. 20만 장 이상의 참치 뼈 이미지를 학습한 ‘AI 엑스레이’를 개발한 것. 현재 이 장비는 전문가들보다 능숙하게 보이지 않는 참치 뼈를 발라내고 있다.

기업들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미래를 좌우할 신사업은 물론 직원들의 신발 속 돌멩이를 제거하는 사무실 단위 프로젝트에도 AI가 들어간다. “소소한 영역에까지 AI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KT가 주도하는 ‘AI 원팀’ 회원사 동원은 AI로 신발 속 돌멩이들을 제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계열사의 현장 직원들을 뽑아 그룹 차원의 ‘AI 추진팀’을 조직하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품질 관리 부서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참치 등급 시스템’이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먼바다에서 잡은 횟감용 참치는 급속 냉동 상태로 국내에 들어온다. 보통 녹지 않은 상태에서 꼬리 위 5㎜ 부분을 자르고 절단면을 살펴 품질 등급을 선별한다. 소수의 전문가만 할 수 있다 보니 업무 효율이 높지 않았다. 동원산업은 1만 장 이상의 꼬리 절단면 이미지와 등급 기준을 학습한 ‘참치 품질 등급 선별 AI 모델’을 개발해 횟감용 참치의 품질 등급을 표준화했다. 회사 관계자는 “2019년 이후 그룹 차원에서 1100여 개 과제를 AI 등을 활용해 자동화했고 56만 시간 이상의 업무 시간을 단축하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한 혁신 사례는 현장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는 것이 많다. 삼성서울병원이 파인헬스케어와 공동 개발한 ‘욕창 단계 예측 솔루션’도 마찬가지다. 이 솔루션은 카메라로 환자의 욕창 부위를 촬영해 조직 손상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예측한다. 심소연 간호사는 “숙련도에 따라 일부 간호사는 욕창 관리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며 “신입 간호사들도 업무용 모바일 기기를 통해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문 영역을 다루는 직원들에게도 AI는 효자 노릇을 한다. LG이노텍이 도입한 ‘AI 특허분석 시스템’이 대표적인 사례다. 변리사들을 동원해 유사 특허와 다른 특허의 침해 가능성 등을 파악하는 작업은 2주일 정도가 소요됐다. 하지만 AI에 이 일을 맡긴 뒤엔 처리 시간이 한 시간 안팎까지 줄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AI는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는 것을 넘어 기업의 신사업을 고도화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자율운항 선박 시장을 노리는 현대중공업그룹이 AI를 적극 활용 중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자율운항 전문 계열사 아비커스는 자율운항솔루션 ‘하이나스 2.0’을 내년 8월부터 SK해운, 장금상선 등의 선박 23척에 공급한다. 주변 환경과 선박을 인지해 실시간 최적의 경로로 항해 속도를 안내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학원 부원장은 “AI 활용법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 ‘엑셀을 다룰 수 있느냐’와 똑같아지는 날이 머지않았다”며 “개발 분야만이 아니라 마케팅, 디자인 등 각 전문 분야에서 AI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기업의 일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