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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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등 미국산 전기차가 우리 정부의 수입 전기차 보조금 중 절반 이상을 쓸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한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것과 대조적이다. 테슬라는 올해 연간 기준으로 한국에서 1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전망이다. 정부가 서둘러 한·미 전기차 보조금 불균형을 해소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보조금 쓸어가는 테슬라

21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정부가 올 상반기 수입 전기 승용차 업체에 지급한 보조금(국비+지방비)은 모두 822억5000만원에 달했다. 전체 전기차 보조금의 5분의 1 수준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47억7000만원이 미국산 전기차 업체에 지급됐다.
"한국은 전기차 보조금 봉"…테슬라, 年 1000억씩 쓸어간다
특히 테슬라가 441억900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아 갔다. 모델 3(4714대), 모델 Y(2032대) 등 6746대에 지급된 돈이다. 나머지는 제너럴모터스(GM)의 볼트 EUV(81대) 등에 들어갔다. 이 추세라면 테슬라는 올해 1000억원가량 보조금을 받아 갈 전망이다.

정부는 5500만원 미만(보조금 상한 100%) 전기 승용차에 대해 연비, 주행거리 등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보조금은 국비 최대 700만원과 국비에 비례해 산출한 지방비로 구성된다. 서울시 기준 모델 3와 모델 Y는 각각 국비 315만원에 지방비 90만원을 더해 405만원을 받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만으로 상반기 수입 승용차 판매 5위에 오를 만큼 인기가 높아 보조금을 싹쓸이하는 모습이다. 지난해엔 1조84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매출 1조원을 돌파했다.

◆한국산 전기차 차별하는 美·中

미국은 지난 16일부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대당 최대 7500달러 보조금을 주기로 했다. 아이오닉 5, EV6 등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전기차를 전량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현대차, 기아는 보조금을 받기 어렵다. 한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대미(對美) 수출은 물론 국내 생산까지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만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이미 수입 전기차에 사실상 보조금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중국산 전기 승용차에 상반기 151억6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버스 등 전기상용차 보조금은 중국 업체가 절반가량을 가져갔다. 중국산 전기버스는 다양한 모델과 싼 가격, 무차별 보조금 등에 힘입어 상반기 436대 판매됐다.

미국산, 중국산 전기차는 한국에서 무더기로 보조금을 받아 가면서 한국산 전기차는 미국, 중국에서 차별당하는 ‘보조금 불균형’을 해소할 대책이 시급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에 전기차 공장을 짓겠다고 했지만, 양산까진 3년 이상 걸릴 전망이다. 우물쭈물하다 시장을 뺏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와 국회가 뒤늦게 미국 측에 차별 금지를 촉구하겠다고 나섰지만, 당장 되돌리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산과 수입산을 차별 대우하는 미국, 중국 등에 대해선 한국 역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차와 달리 테슬라는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조차 없다. 늦었지만 내년이라도 보조금 정책을 개편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요구다.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미국, 중국에 한국산 무차별 대우를 지속해서 요청하되 필요하면 한시적이라도 우리의 상호주의 원칙 적용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