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향자 의원(우) 만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사진=주한중국대사관 위챗 계정]
양향자 의원(우) 만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 [사진=주한중국대사관 위챗 계정]
미국이 중국의 고립을 위해 한국에 반도체 공급망 동맹 이른바 '칩4'(미국·한국·대만·일본)' 참여를 강하게 요청한 가운데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한국 여당과 정부의 반도체 관련 핵심 인사들을 잇따라 접촉하며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26일 주한중국대사관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에 따르면 싱 대사는 전날 국민의힘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향자 의원(무소속)과 만나 반도체를 포함한 각 영역에서의 실질적 협력을 논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중국은 공평·공정한 시장의 원칙을 견지하고 외부 간섭을 배제하며 반도체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고 세계 산업망과 공급망의 안정성을 수호하는 데 한국과 협력하길 원한다"고 말했다고 중국대사관은 밝혔다.

같은 날 싱 대사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의 회동에서 양국간 경제·무역 관계 심화 방안과 실질적 협력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 첫번째)이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양국 간 통상협력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2022.7.25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 첫번째)이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양국 간 통상협력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2022.7.25 [사진=산업통상자원부]
그는 올해 한중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한중간 경제·무역 분야 조율과 협력을 더 강화함으로써 양국 관계와 경제 발전에 더 많은 긍정적 공헌을 하길 원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중국 측은 미래에 한국 기업을 포함한 외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 다음달 말까지 '칩4' 참여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지난 3월 반도체 공급망 형성을 위해 자국과 한국, 일본, 대만이 참여하는 칩4를 처음 제안했다. 반도체 선진국들을 규합해 중국을 견제하고 반도체 시장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의도다.

중국의 반발이 만만찮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은 2011년 12.7%에서 2021년 16.1%로 올라가긴 했지만 지난해 중국 기업의 비중이 6.6%에 그친 상황. 중국이 천명한 '2025년 반도체 자급률 70%'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의 칩4 동맹 가입 움직임에 압박을 가하며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자유무역 원칙을 표방하면서 국가 역량을 남용해 과학기술과 경제무역 문제를 정치화, 도구화, 무기화하고 협박 외교를 일삼고 있다"면서 한국이 칩4에 참여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0
중국 관영매체들도 연일 한국의 칩4 참여를 견제하는 기사나 사설을 싣고 있다. 중국 공산당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1일 한국을 지목해 "한국의 칩4 동맹 가입은 상업적 자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칩4 동맹 가입은 정부와 국내 기업에게도 부담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 1280억달러 가운데 중국 수출은 502억달러로 약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포함하면 60%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각각 중국 시안과 우시에 반도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대중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을 배제한 이번 공급망 동맹 참여는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도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칩4동맹에 가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현재까지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메모리반도체를 대체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없어 미·중 양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며 반도체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지만 공급망 재편 이후에는 중립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