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욱 일신하이폴리 회장이 경기 반월국가산단내 본사 공장에서 액정유리 보호필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임동욱 일신하이폴리 회장이 경기 반월국가산단내 본사 공장에서 액정유리 보호필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세계 최대 화학회사로 꼽히는 듀폰, 세계 최대 디스플레이용 유리기판업체 코닝 등에선 최근 2년간 경기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이 회사 공장을 수시로 방문해 공장 가동 이상 유무를 체크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공장이 셧다운될까 우려한 나머지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웠던 2020년엔 마스크를 대량 공수해 이 회사에 공급했을 정도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전자광학 필름의 생산이 코로나 방역조치로 멈추게 되면, 전세계 스마트폰, TV, 노트북, 냉장고, 정수기 등과 차량용 전장제품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농업용·산업용 필름 시장 국내 1위기업으로 세계 전자광학 필름 시장까지 석권한 국내 중견기업 일신하이폴리 얘기다. 한가지도 1등 제품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제조업계에서 창립 후 55년간 생산하는 모든 제품이 '국내 최초 개발, 국내 최대 시장점유율'이란 기록을 세운 기업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지난 25일 창립 55주년을 맞아 사명을 일신화학공업에서 일신하이폴리로 바꾸고 하이테크 필름분야 세계 1위를 목표로 내걸었다.
일신하이폴리 공장 멈추면...전세계 스마트폰, TV, 노트북, 車전장 생산 차질
스마트폰, TV, 노트북, 냉장고, 정수기, 자동차 전장제품 등 모든 전자제품에는 초박막 회로기판(플렉서블 PCB)이 들어간다. 예컨대 반도체칩이 명령을 내리는 ‘뇌’기능과 비슷하다면 이 기판들은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심장 위장 등 '장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스마트폰 하나에도 0.1㎜두께 수십겹의 회로기판이 들어간다. 보통 드라이필름에 노광장치로 빛을 쏘여 회로를 입히면 하나의 기판이 만들어진다. 드라이필름에는 마이크로미터(1000분의 1㎜)크기의 이물질도 묻으면 안되기 때문에 폴리올레핀 등 고분자화합물로 만들어진 보호필름이 붙어야한다.

일신하이폴리는 이 보호필름을 생산하는 세계 2위 기업이다. 전세계에서 드라이필름을 만드는 기업은 듀폰, 히타치를 포함해 국내 코오롱 등 30여곳에 달하지만 보호필름 생산업체는 일신하이폴리를 포함해 단 3곳에 불과하다. 그만큼 생산하기 어렵고 아무나 진출하지 못하는 분야다. 반도체 공장처럼 먼지하나 허용하지 않는 청정 생산라인에서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두께 편차도 허용하지 않는 까다로운 생산 조건을 지켜야한다. 보호필름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기판의 회로에 단락이 발생하고 이는 전자제품의 치명적인 품질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일신하이폴리가 2005년 국산화를 통해 이 시장에 진출하자, 30년간 이 시장을 독점해온 일본업체의 아성이 무너져 현재 대세가 역전됐다. 전세계 전자제품용 회로기판에 드라이필름을 공급하는 듀퐁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보호필름은 이 회사 제품이다.
일신하이폴리의 경기 반월국가산업단지 공장 전경
일신하이폴리의 경기 반월국가산업단지 공장 전경
일신하이폴리가 어렵게 영역을 개척한 또 다른 전자광학용 필름시장은 액정유리 보호필름이다. LCD, OLED 등 디스플레이패널에는 초박막 유리기판이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데, 이를 독점적으로 생산하는 기업은 미국 코닝사다. 코닝사 액정유리의 품질을 보호하는 보호필름 역시 일신하이폴리가 최대 공급사다. 당초 미국 회사가 독점해오던 이 시장에 일신하이폴리가 2010년 국산화로 도전장을 냈고 현재 세계 최대 생산기업이 됐다. 이러한 공로로 임동욱 일신하이폴리 회장은 2015년 중소기업계 최대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농민들의 '삼성전자'...산업용필름 등 全제품 국내 최초, 국내 최다판매
이 회사는 농업용·산업용 필름 분야에서 부동의 1위 생산 기업이다. 대상그룹(옛 미원그룹) 설립 초기 멤버였던 이 회사 창업주 고(故) 임오순 선대 회장은 당시 비닐(미원 제품 포장용)이 국내 처음 생산되는 것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1962년 서울 방산시장에 비닐판매점인 일신상회를 냈고 일신화학공업을 1967년 설립해 본격적인 비닐 생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학표'라는 브랜드로 비닐하우스용 필름과 잡초 방지용 특수 멀칭필름, 가축 사료용 곤포 사일리지 필름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보급하면서 농업 근대화를 이끌었다. 1970~1980년대 오일쇼크때 기름값이 2배이상 뛰자 대부분 경쟁업체들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원재료 함유량을 속여 팔았지만 이 회사는 정량 기준과 품질을 고수했다. 때문에 태풍이 닥치면 대부분 찢겨나간 다른 필름과 달리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품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었다. 임동욱 회장은 "현재 농업용 필름 100여가지 제품 모두 국내 최초 개발이자 국내 최대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며 "농민들에게 학표는 삼성전자와 같은 인지도"라고 설명했다.
일신하이폴리의 가축 사료용 곤포 사일리지 필름인 소머기. 일신하이폴리 제공
일신하이폴리의 가축 사료용 곤포 사일리지 필름인 소머기. 일신하이폴리 제공
수출용 제품을 컨테이너에 싣기전 래핑할때 쓰이는 산업용 필름(파레트 스트레치필름) 역시 국내 최초 개발해 현재 시장 점유율1위가 됐다. 삼성SDI, LG화학, 롯데칠성음료, 농심, CJ, 신세계, 한화솔루션 등에 주로 납품하고 있다. 계열분리 관계회사인 아이세로미림화학은 반도체 세정액을 담을 수 있는 첨단 용기를 만드는 국내 최대 기업이다. 관계사를 포함한 일신하이폴리 매출은 코로나19 사태에도 매년 10%이상 매출이 우상향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2019년 2000억원에서 2020년 2200억원으로 10%증가했고, 2021년엔 2500억원으로 13.6%증가했다.
"日기술 어떻게 따라잡나","2세가 무모한 도전" 비난 딛고 4년 만에 결실
임오순 선대 회장의 장남으로 2003년 회사 경영권을 물려 받은 임동욱 회장은 농업용·산업용 필름만으론 성장에 한계 있다고 보고 2005년 전자광학용(LCD) 필름 국산화에 도전했다. 일본이 독점하던 시장에 새롭게 진출한 것이다. 200억원의 비용을 들여 국내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린룸 필름 공장을 짓고 최첨단 설비도 들여놔 꾸준히 품질을 개선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중소기업이 일본 기술력을 따라잡긴 불가능하다고 국내외 대기업들은 품질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만약 필름에 조금이라도 하자가 생길 경우 TV와 스마트폰, 노트북 생산 전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어떤 기업도 쉽게 거래선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압출기를 통과한 원료에 공기를 주입해 일정두께로 필름을 만들기위한 버블성형을 하고 있다. 일신하이폴리 제공
압출기를 통과한 원료에 공기를 주입해 일정두께로 필름을 만들기위한 버블성형을 하고 있다. 일신하이폴리 제공
4년이 지나도록 관련 매출이 나오지 않자 임 회장에겐 잠 못이루는 밤이 늘어났다. 자신만을 믿고 따라온 임직원들에게 한동안 낯을 들지 못했다고 한다. 주변에서 '2세 경영자가 사고를 쳤다'는 비아냥도 들어야했다. 노조위원장까지 찾아와 "왜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하느냐"며 항의했다. 어려웠던 상황은 역설적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반전됐다. 환율이 치솟으면서 일본 필름을 수입하던 국내외 대기업들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국산으로 대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성능 테스트결과 일본 제품에 전혀 뒤쳐지지 않는 다는 평가가 나오자 국내외 대기업들은 서로 공급해달라며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는 "인간의 노력으로 전혀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글로벌금융위기까지 겹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었다"며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뀌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전자광학필름 매출은 급증했다. 올해 처음으로 전자광학·산업용필름 등 비농업용 필름 매출 비중이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물량 요청이 쇄도하자 작년 60억원을 들여 전자광학필름용 생산라인을 증설하기도 했다. 정철수 일신하이폴리 사장은 "전자광학용·산업용·농업용 필름 등 3가지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춰, 원자재가격 급등, 경기침체 등 어떤 경기 변동에도 안정적인 매출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연 상태에서 생분해되는 생분해성 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현재 상용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임 회장은 "친환경 생분해성 필름 사업을 확대하기위해 관련 공장 증축도 진행하고 있다"며 "의료폐기물용 필름, 칼라강판용 필름 등 하이테크 제품들을 꾸준히 개발해 연내 상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