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규제 5개월…금융사, 경쟁·혁신 실종
내년도 가계대출 증가율을 올해(6%대)보다 낮은 4~5%로 묶기로 한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고신용자 대출 증가율이 연간 4.5%를 넘지 않도록 해달라”고 권고했다. 대출 대상자를 신용등급별로 구분하고 고신용자 대출을 더 깐깐하게 관리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당국은 2금융권에도 내년 목표치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금융사들의 내년도 가계대출 실적이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의해 이미 확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 기업의 매출 목표를 정해주는 셈”이라며 “대형 은행들은 내년에도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은 내년 대출 한도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은행 관계자들은 “우리 같은 후발주자들이 한도에 묶이면 덩치를 키울 수 없고, 시중은행과의 경쟁에서도 밀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지난 8월부터 시행한 가계대출 총량규제를 내년에도 지속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금융산업에 건전한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국이 시중은행 인터넷은행 저축은행 등 업권별 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별로 구체적인 목표치를 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제출한 계획을 놓고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금융사들은 “당국이 여러 차례 계획을 반려하면서 사실상 목표치를 정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업권별 총량을 넘어 금융사별 대출 한도까지 당국이 정해주는 것은 이례적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총량규제가 강화된 이후 우량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금리를 깎아주고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며 경쟁하는 게 오히려 독인 상황”이라며 “정상적인 경쟁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할당량만큼만 대출 자산을 늘릴 수 있다 보니 고객 유치와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가격 경쟁과 혁신이 사라질 것이란 얘기다.

당국은 올해 21.1%이던 저축은행업권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도 내년에는 10.8~14.8% 수준으로 낮추라고 권고했다. 올해 목표치를 잘 지킨 대형사는 14%대, 올해 대출을 많이 늘린 중소형사는 10%대 할당량을 받았다. 한 중형 저축은행 대표는 “이런 규제가 이어지면 1등은 늘 1등이고 꼴찌는 영원히 꼴찌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