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암호화폐업계에 코인을 맡기면 ‘이자’를 주는 이른바 ‘코인 은행’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코인은행으로부터 운용 위탁을 받아 수익을 내는 ‘코인 자산운용사’도 몸집을 키우고 있다. 암호화폐거래소가 금융위원회의 등록 신고를 통해 제도권에 진입하면서 코인 관련 금융업이 본격적으로 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암호화폐 예금·대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델리오의 정상호 대표는 “수탁(커스터디)업에서 시작한 업체들이 운용이나 대출 등으로 서비스 범위를 넓히고 있다”며 “코인 금융사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 2~5%대 수신금리’ 암호화폐 은행 등장

14일 금융정보분석원에 따르면 가상자산사업자로 신고 접수한 업체는 지난 10월 신고가 수리된 업비트를 포함해 42곳이다. 이 중 거래업자(거래소)가 아니라 기타업자(수탁업체)로 접수한 업체는 13곳이다. 암호화폐 수탁업은 주로 기관투자가의 암호화폐를 받아 보관하는 사업이다. 게임사 위메이드는 지난 3월 기준 1500억원어치의 암호화폐를 사들여 암호화폐 수탁사인 한국디지털에셋(KODA)에 맡긴 것으로 전해진다. 김준홍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 대표는 “암호화폐 관련 사업은 ‘보관’이 출발점”이라며 “은행업으로 치면 일종의 수신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수료는 1년에 0.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은행이 직접 암호화폐를 수탁할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합작 투자한 업체를 통해 암호화폐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복안”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블록체인 전문 투자사인 해시드와 함께 합작 설립한 KODA가 대표적이다. 신한은행도 KDAC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했고, 농협은행은 카르도, 우리은행은 디커스터디 지분을 갖고 있다.
코인 맡기면 이자 주고, 굴려주고…몸집 커지는 '암호화폐 금융업'
수탁업체는 코인으로 ‘이자’를 얹어주는 ‘은행’ 역할도 한다. 카카오 자회사 그라운드X의 클레이튼이나 테라프로젝트의 루나 등을 맡기면 지난 13일 기준 연 2~5%대 이자율로 코인을 돌려준다. 문건기 KODA 대표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며 “운용사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는 투자 상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구조”라고 말했다. 델리오는 최근 코인 담보대출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사실상 ‘코인 은행’이란 설명이다.

암호화폐 받아 대신 운용…대출상품도 출시

직접 차익거래를 하면서 수익을 내는 운용업도 몸집을 키우고 있다. 비브릭이나 하루뱅크, 헤이비트, 알파논스, 델리오, 베가엑스, 샌드뱅크, 업파이(코인플러그) 등이 꼽힌다. 운용사가 암호화폐를 위탁받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직접 기관투자가로부터 암호화폐를 받거나 수탁업체를 통해 위탁 운용하는 B2B업체와 앱에 투자상품을 올려놓고 개인투자자의 암호화폐를 받아 운용하는 B2C업체다. 전자는 비브릭과 알파논스, 후자는 샌드뱅크·델리오·하루뱅크·헤이비트 등이 있다. 헤이비트는 로보어드바이저 모델을 개발해 운용사에 제공하기도 한다. 권용진 비브릭 대표는 “펀드상품을 만드는 단계까지 암호화폐업계가 세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델리오는 1억원 이상 코인을 맡긴 고객의 예치금 비중이 전체 예치금의 90%에 달한다.

코인 투자상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델리오는 지난 13일 기준 15개, 샌드뱅크는 9개의 상품이 올라와 있다. 최소 15일에서 6개월까지 중도 인출 없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테더를 맡기면 연 3.5~30.0%(코인 기준)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백훈종 샌드뱅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고객 자산이 들어오면 자체 운용 30%, 대출 30%, 다른 운용사 위탁 30% 등 상품마다 포트폴리오 배분을 한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