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넉 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기업 경영진의 불만은 여전하다. 법에 이어 나온 시행령에서조차 내용이 모호하고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는 것이지만 중대재해의 유형과 경영책임자 범위 등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의 지적이다.
"경찰이 중대재해 수사하면 처벌 급증…기업활동 크게 위축될 것"
이런 와중에 기업 경영진을 긴장시키는 사안이 하나 더 생겼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 경찰도 수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금은 고용노동부만 수사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업들은 경찰의 경우 중대재해 관련 전문성이 떨어져 예방보다 처벌 위주로 접근할 공산이 커 기업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무슨 상관이냐”
더불어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관계자는 “최근 경찰 관계자들이 법사위 소속 의원실을 일일이 돌면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된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에게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청은 법사위 등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은 경찰과 고용부가 공동 수사하되, 중복되면 양해각서(MOU)를 맺어 수사권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이유로 들고 있다. 현재 노동 관련 수사는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검찰 지휘를 받아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마무리됐고 노동 관련 사항은 검찰이 맡기로 한 6대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에 따라 노동 관련 법규 위반 사항은 경찰이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올해 1월 발효됐으며 검찰은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범죄만 담당한다.

경찰청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된 광주 철거현장 붕괴사고에서 경찰이 광주노동청을 압수수색한 사례를 들며 “근로감독관이 사업주 등과 유착관계가 의심되거나, 위법이 있는데도 수사하지 않는 등 특수한 경우에는 경찰 개입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선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 간 업무 구분이며, 고용부 권한을 당연히 경찰이 가져가겠다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경찰은 고용부 근로감독관이 가진 노동관계법 전속 수사권을 폐지하고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고용부·경제계 “중복 수사 우려”
고용부는 경찰 주장에 근거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부는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출범하고 중대재해 수사를 위한 전담 조직에서만 감독관 110명을 증원한 상태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고용부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를 전담하는 전문 조직을 갖춘 상황에서 경찰과 공동수사를 하게 되면 과잉 수사를 불러올 것”이라며 “법 시행이 4개월 남은 상황에서 굳이 중대재해만 경찰이 공동 수사하겠다고 나서면 산업현장에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광주 철거현장 사고에서 고용청을 압수수색한 것은 자료 진위 파악 때문이었지 고용부의 유착이나 비위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근로감독관의 업무 수행 등이 불공정하면 형법에 따라 근로감독관을 수사하면 그만이라는 반박도 나온다.

경영계도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경찰이 근로감독관처럼 중대재해 관련 수사만 하고 갈지 의문”이라며 “가뜩이나 중대재해처벌법 해석이 어려운데, 경찰은 상대적으로 관련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제조업체에서 대외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임원은 “기업이 중복 수사를 받게 되거나 수사가 지연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악몽”이라며 “게다가 경찰은 예방이 아니라 처벌 위주로 접근할 수밖에 없어 걱정이 크다”고 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수사권은 반드시 일원화돼야 하며 더 전문성을 갖춘 수사기관이 맡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박대수 의원은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모든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데 경찰이 이제 와서 중대재해처벌법 수사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모르겠다”며 “사업주 처벌과 함께 노동자의 권리 구제도 같이 병행해야 하므로 근로감독관과 같은 안전보건관리 전문가가 수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