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규제심사 등 입법 절차를 부실하게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내 관련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부가 이해당사자의 반대와 전문가들의 우려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고 고용보험 이견 없다" 고용부 축소 보고
7일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 회의록’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4일 열린 고용보험법 개정안 관련 규제심사 회의에서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에 대해서는) 노사 간에 이견이 없다’고 보고했고, 규개위는 이를 받아들여 규제심사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관련 노사 단체에 확인한 결과 ‘노사 간 이견이 없다’는 고용부의 보고는 거짓 또는 왜곡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정부 입법안에 분명한 반대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5월 고용보험법을 개정해 올해 12월부터 예술인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데 이어 내년부터는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기 위해 추가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7월 입법예고한 데 이어 지난달 규제심사를 받았다.

경영계는 자영업자와 비슷한 특고 종사자를 기존 고용보험에 포함시키는 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1일 공동으로 입장문을 내고 “고용보험료를 전액 자신이 부담하는 자영업자와는 달리 특고 종사자가 근로자처럼 노사 반반씩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비자발적 실업 때만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근로자에 비해 특고 종사자는 소득 감소나 계약 해지 등 실업급여를 받기가 더 쉬워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도 했다. 경영계는 특고 종사자와 관련해 별도의 보험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정부안에 반대하는 의견을 7월 말 제출했다. 한경연은 특고 종사자는 비자발적 실직 때만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근로자와 달리 소득이 감소했을 때도 실업급여 신청이 가능한 만큼 고용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 안팎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특고 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 전인 올해부터 당장 고용보험 적립금이 모두 소진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노동계는 자신들이 기존에 요구해 온 수준보다 미흡하다며 정부 입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특고 종사자를 근로자로 전면 인정하고 모든 특고 종사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라고 주장한다. 하나의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전속성’이 높은 업종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정부안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특고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고용보험 ‘당연 가입’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골프장 캐디들이 좋은 예다. 이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되면 소득이 노출돼 소득세와 건강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료도 추가로 납부해 연간 소득의 약 20% 내외를 추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노사 단체와 이해관계자들이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견 없음’으로 무사 통과된 규개위 규제심사를 놓고 비판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올해 정기국회 때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고용부는 거짓 보고를 하고 규개위는 이를 알면서도 눈감아준 채 엉터리 심사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는 8일 국무회의에서 고용보험법을 의결한 뒤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특고 종사자들이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도 많지 않다. 경총에 따르면 일본 미국 등에선 자영업자와 특고 종사자 모두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특고 종사자가 고용보험에 임의 가입할 수 있지만 보험료는 전액 본인이 부담한다. 근로자라기보다는 자영업업자로 보기 때문이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

○알려드립니다

본지는 지난 9월 8일자 「“특고 고용보험 이견 없다” 고용부 축소보고」 제하의 기사에서 ‘규제개혁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8월 14일 열린 고용보험법 개정안 관련 규제심사 회의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에 대해) 노사 간에 이견이 없다’고 보고했고, 규개위는 이를 받아들여 규제심사를 엉터리로 통과시켰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9월 24일 수정된 규개위 회의록에 따르면, 고용부는 시행 자체는 노사 간에 이견이 없으나 형태, 내용, 시기 등 구체적으로는 의견 차이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한 규개위는 회의 당일 고용부의 발언만 들은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노동계 및 경영계 입장을 대변한 단체의 의견을 청취하고 캐디 등 시행 자체를 반대하는 집단이 있다는 의견도 제출받은 것으로 확인돼 이를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