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통상전쟁이 고율 관세 부과를 넘어 기업 투자 규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사진)는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미국의 핵심인 기술산업에서 수많은 지식재산권과 기술을 훔쳐왔다”며 “(관세 부과에 이어) 다음 단계는 중국이 미국의 기술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중국 기업의 첨단기술 투자를 틀어막는 방안을 오는 30일까지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500억달러(약 55조원)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 발표에 이은 조치다. 미국은 중국 정부가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를 차단하는 데 활용해온 인터넷 통제망인 ‘만리방화벽’도 제거해야 할 무역장벽으로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도 중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관세 넘어 기업 투자 제한으로

USTR "다음 단계는 中기업 미국 투자 금지"
중국은 산업 고도화를 위해 ‘중국제조 2025’ 전략을 추진하면서 끊임없이 미국의 첨단 기술을 노려왔다.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해 샌디스크, 웨스턴디지털 등 미국의 핵심 반도체 회사 인수합병(M&A)을 추진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 바이오공학 등 첨단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가 300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월 취임하자마자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강력히 견제해왔다.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싱가포르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가로막은 게 대표적이다. 퀄컴의 5세대(5G) 통신기술이 브로드컴 고객사인 중국 화웨이 등에 넘어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작년 초부터 지난 2월까지 CFIUS가 막은 중국계 회사의 미국 기업 M&A 시도는 12건에 달한다. 2016년엔 한 해 동안 4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의 대(對)미국 투자는 2016년 465억달러에서 2017년 297억달러로 36.1% 감소했다. 올 1~2월에도 12억달러에 그쳤다. 최근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대폭 줄었다.

미국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외국인 투자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CFIUS의 권한을 더 강화할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국제긴급경제권한법(IEEPA)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이례적이고 특별한 위협’에 대응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거래를 차단하고 자산을 압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 기업의 투자까지 틀어막는 건 첨단기술을 훔치던 관행을 바꾸라는 압박이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미국의 기술산업은 5500만 개 일자리가 달린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커지는 중국의 ‘맞불 보복’ 가능성

최근엔 인터넷 통제망인 만리방화벽을 없앨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포함해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25개 웹사이트 중 8개를 차단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블룸버그통신 로이터통신 등 미 언론에 대한 접속도 안 된다. 미국은 중국이 구글 페이스북 접속을 막고 알리바바 텐센트를 육성하는 불공정 경쟁을 해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상대로 인허가 지연이나 세무조사와 품질관리, 반독점, 환경, 소비자 보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제가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 점검을 이유로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거나 식품 안전을 앞세워 중국 내 스타벅스 매장을 폐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중국에 투자한 금액만 2000억달러”라며 “중국이 미국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이외에도 가할 수 있는 보복 조치가 많다”고 보도했다.

일부에선 중국이 1조1000억달러가 넘는 미 국채 보유분을 팔거나 위안화를 대폭 평가 절하해 보복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뉴욕=김현석/베이징=강동균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