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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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2016년 9월 인도 방문 이후 1년6개월 만의 출장이다. 삼성의 주요 사업 파트너와 고객사, 핵심 투자자 등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삼성 계열사들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와병과 이 부회장 구속 등으로 해외 거래처를 관리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그룹 전반의 해외 경영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5일 경제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창립 80주년 기념일인 지난 22일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 안팎에선 지멘스, BMW, 폭스바겐, 발렌베리, 로슈 등 삼성전자와 거래하고 있거나 이 부회장이 개인적으로 친분을 다져온 글로벌 기업 및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면담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까지 사외이사로 재직한 글로벌 자동차회사 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지주회사인 엑소르그룹 경영진과 만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단독] 이재용 부회장 유럽행… 18개월 만에 해외출장
이 부회장의 이번 유럽 출장은 지난달 5일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45일 만의 첫 공식 일정이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석방 직후부터 그룹 현안을 적극 챙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돈 것과 달리 자택에서 칩거해 왔다.

지난달 열린 삼성전자 이사회와 경기 화성 반도체공장 기공식 등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뇌물죄’ 등의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고 자신과 삼성에 대한 사회 일각의 비판 여론이 여전한 만큼 당장 경영활동을 재개하는 데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삼성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의 이번 출장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례적인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내와 달리 해외 경영현장을 챙기고 나선 데 대해 “삼성의 해외 인적 네트워크가 조금씩 흔들리는 등 해외 비즈니스 여건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2000년대 들어 이건희 회장을 수행하거나 자신이 직접 다니면서 해외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 정치인 및 고위 관료 등을 대상으로 폭넓은 인맥을 쌓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2월 이 부회장이 구속되자 그를 잘 알고 있는 해외 기업인들은 적잖게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기업인을 법원의 최종 확정판결 전까지 거의 구속하지 않는 자국 사법체계 틀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앞으로 재판이나 정치적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삼성전자에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삼성에 가장 필요한 게 이 부회장이 수십 년간 쌓아온 글로벌 인맥”이라고 전했다.

이 부회장이 유럽을 거쳐 다른 지역으로도 출장을 다닐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삼성전자의 해외 사업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귀국 후 다시 출국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삼성전자는 매출의 87%가 해외에서 나오고 전체 임직원의 70%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 생산·판매 조직이 나가 있는 국가는 79개국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이번 출장을 계기로 2016년 11월 세계 1위 전장업체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인수한 뒤 사실상 중단된 삼성그룹의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재개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중요한 M&A를 위해 이 부회장이 꼭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 등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그동안 삼성 경영진이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앞두고 글로벌 M&A를 위한 사전 검토를 많이 해왔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출국일(22일)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이날은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그룹 모태인 삼성상회를 창립한 지 80주년이 되는 날이다. 글로벌 기업인들과 면담 일정을 잡다 보니 출국일과 창립기념일이 겹친 것으로 알려졌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