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부실 발생시 손해배상 청구 불가 조건에 포기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한 호반건설 김상열 회장은 미처 알지 못했던 대우건설의 대규모 해외 부실이 인수 포기의 주된 원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호반건설은 지난 7일 대우건설의 연간 실적 발표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4분기 대규모 해외손실이 발생하자 하루 만인 8일 대우건설 인수를 공식 철회했다.

김 회장은 9일 호반건설 사옥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2016년 말에 (부실을) 다 깨끗이 털었다고 했는데 갑자기 그렇게 나오니까 (당황스러웠다)"며 "우리가 전체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보니 부담스럽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이 진행 중인 해외 프로젝트가 적지 않은데 해외부실 발생 가능성에 대해 예측을 못 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은 예상은 했어도, 한 군데서만 지금 적은 숫자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이 올해 초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현장에서 장기 주문 제작한 기자재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하고 재제작에 들어가면서 작년 4분기 실적에 3천억원의 잠재 손실을 반영한 점을 언급한 것이다.

이번 대우건설의 해외 손실액 3천억원은 호반건설 입장에서는 한해 매출액의 4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대우건설 부실 돌출에 당혹…아쉽다"
김 회장은 그동안 산업은행과 협의 과정에서 전문가들을 통해 해외 사업에 대한 검토를 안 했느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은 우리가 접근하기 어려웠다.

(산은 측이) 실사에서 하라면서 우리한테 자료를 전혀 안 줬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현재 카타르, 오만, 인도, 나이지리아,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등지에서 국외 사업을 진행 중이나 호반건설은 산업은행과 협의 과정에서 사업장별 상황을 전혀 공유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대우건설 노동조합의 반발이나 정치권에서 제기된 '호남 특혜' 의혹 등에 대한 부담이 인수 포기로 이어진 것 아닌지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도 부담은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니까 우리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호반이 과거에서 잦은 번복을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전에 그런 적이 없다"면서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진정성을 갖고 임해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인수 포기 결정에 대해 "여기까지 왔는데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대우건설 부실 돌출에 당혹…아쉽다"
업계에서는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한 데에는 '진술과 보증' 조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진술과 보증'은 매물에서 우발적인 채무가 발생하면 금액을 깎아주는 것으로 보통 4~5% 안팎의 수준으로 범위를 설정한다.

이번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해서는 이 범위가 3%선으로 설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진술과 보증 위반시 통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번에는 '딜'을 진행하는 조건에 산업은행이 손해배상 청구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포함하면서 호반건설에 필요 시 'M&A 보험'을 통해 손해를 보장받으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M&A에 정통한 관계자는 "일각에서 호반이 가격 협상도 안해보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발을 뺀다고 했는데 호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딜 구조를 보면 매각 주체가 산업은행이 아니라 '산은PE'여서 매각하고 나면 인수 주체가 없어지다보니 진술 배상, 손해 보장을 못 해주는 구조"라며 "한마디로 인수자는 돈을 내고 실사를 한 뒤 최대 3% 범위에서 가격을 깎을 수 있고 그 이후엔 부실이 있어도 알아서 다 떠안아야 하는 조건이어서 더 이상 협상할 내용이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호반이 해외 부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장 정밀 실사를 해서 감당할 수 있을지 판단해보겠다고 했는데 MOU 체결도 전에 갑자기 해외부실이 터졌다"며 "이미 손실로 반영된 금액도 크고 다른 해외 현장도 많이 있으니 호반으로서는 추가 부실이 또 나올 수 있다는 불안이 당연히 있었고 그렇더라도 전혀 보장을 받을 수 없으니 더이상 협상할 룸(여지)이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