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총자산 5조원 이상’인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규제를 받는 대기업집단이 너무 많다’는 지적에는 공감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인 ‘경제민주화’ 추진 주무 부처로서 ‘대기업 규제 완화’ 총대를 메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에 대기업집단 규제 조항이 들어간 것은 1986년 12월이다. 대기업집단 규제는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대기업집단 규제의 도입 근거는 ‘대기업집단의 무리한 사업 확장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당시 대기업들이 저금리로 대출을 많이 받기 위해 상호출자를 통해 계열사를 마구잡이로 늘린 것이 문제가 됐다”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후 30년 동안 공정거래법 14조 ‘대기업집단 규제’는 경제 상황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는 대기업집단의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했다가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재도입했다. 2002년 1월엔 대기업집단 지정 요건을 ‘30대 대기업집단’에서 ‘총자산 2조원 이상’으로 바꿨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엔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출자총액제한제가 폐지됐고 대안으로 대기업집단 공시제도가 도입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대선 공약에 따라 신규 순환출자 전면 금지라는 규제가 새로 추가됐다.

공정위 내부에서도 대기업집단 규제를 경제 상황에 따라 조정할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과거 총자산 5조원 이상인 기업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기로 했을 때와 지금 경제 규모를 생각해 보면 기준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 이론적으로는 맞다”며 “상향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지는 않고 있고 경제·사회적 파급 효과가 큰 사안인 만큼 상향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정위가 대기업집단 지정 요건 변경을 적극 추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해부터 대기업집단 대상 ‘일감 몰아주기’ 조사를 벌인 공정위가 돌연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올리면 ‘기업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 안팎에선 내심 청와대와 여당이 직접 나서주길 바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