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자동차 SK 등 국내 주요 그룹에서 ‘오너’ 회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각 계열사 경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LG는 다르다. 구본무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의사결정에 세세히 간섭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룹의 큰 방향이나 계열사가 함께 일하는 사항에 대해서만 최종 결정을 한다. LG그룹 지주사인 (주)LG도 계열사 위에 군림하기보다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대한민국 CFO 리포트] LG CFO 제1 덕목은 '소통'…지주사-계열사간 연결고리 역할
이런 경영 방식은 CEO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살려준다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이 최고재무책임자(CFO)다. LG그룹 CFO들이 ‘돈’을 무기로 회사 경영을 좌지우지하거나 인수합병(M&A)과 같은 주요 의사 결정의 전면에 나서는 사례는 많지 않다. 하지만 그룹 최고경영진과 (주)LG의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CEO를 돕는 동시에 리스크를 관리한다는 점에서 LG그룹 CFO는 ‘사업의 조력자’로 불린다. ‘깐깐함’으로 대변되는 다른 기업 CFO와 달리 LG그룹 CFO의 제1 덕목은 ‘소통 능력’이다. 지주사와 계열사, CEO 간 의사소통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직 12명의 CFO 중 8명이 지주사(구조조정본부)를 거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CEO 돕는 ‘사업의 조력자’

LG그룹 최고참 CFO는 조석제 LG화학 사장이다. 부산대 출신으로 구조조정본부, (주)LG의 요직을 거쳐 주력 계열사인 LG화학 CFO에까지 올라 직원들 사이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불린다. 특히 2003년 LG가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때 (주)LG 재경팀장을 맡은 것은 조 사장에 대한 최고경영진의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후배들의 유학 기회까지 꼼꼼히 챙겨줘 회사 내에서 덕망이 높다고 한다.

정도현 LG전자 사장은 최근 LG그룹에서 가장 바쁜 CFO로 꼽힌다. 실적 부진으로 비용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미래 준비를 위해 연구개발(R&D) 자금은 늘려야 한다는 두 과제를 한꺼번에 맡고 있어서다. 힘든 상황에서도 직원들이 정 사장을 잘 따르는 건 ‘소탈한 리더십’ 덕이라는 평가다. 종종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주변 식당가에서 젊은 직원들과 가벼운 식사를 하며 편안히 대화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김영섭 LG유플러스 부사장은 구조조정본부와 LG CNS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은 뒤 지난해 유플러스로 옮겼다. 1980년대 우수인재의 산실이었던 LG상사(당시 럭키금성상사) 출신이다.

정호영 LG생활건강 부사장은 ‘천재과’로 분류된다. 숫자로 가득한 연간 실적 보고를 원고도 없이 줄줄 외워서 한다. 그만큼 업무 이해도가 깊고 논리적이라는 평이다. 내부 관리도 엄격하다. 보고를 받을 때는 꼼꼼히 되물어 직원들이 진땀을 뺀다고 한다. CEO에게도 할 말이 있으면 반드시 하는 스타일이라는 전언이다.

LG상사는 올 들어 (주)LG에서 “사업관리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많은 해외 광산, 플랜트 지분을 사들이고 범한판토스까지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실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상사는 공동 지분투자를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재무 관련 업무가 복잡한 편이다. 호평의 중심에는 허성 부사장이 있다. 치밀하고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나 있다. 직원들이 ‘푸근하다’고 허 부사장을 평가할 정도로 인품도 뛰어나다.

지주사 및 계열사와의 소통 창구 역할

LG CNS는 최근 LG그룹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로 꼽힌다. 에너지, 핀테크(금융+기술), 사물인터넷(IoT) 등 그룹의 미래사업에 모두 관여하고 있어서다. CFO인 성기섭 부사장은 그룹 최고의 세무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2003년 그룹의 지주사 전환 때 실무를 총괄했다. LG데이콤, 유플러스 등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다.

이혁주 (주)LG 전무는 그룹 내 CFO 중 유일하게 정치학과(서울대) 출신이다. 임원을 달기 전까지 경력을 LG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과 (주)LG에서 쌓았다. 이때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신임을 얻었다. CFO 중 비교적 젊은 나이(53세)임에도 지주사에서 계열사를 관리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정치학과 출신답게 지주회사와 각 계열사를 잇는 소통 창구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김상돈 LG디스플레이 전무는 3개(서브원, LG유플러스, LG디스플레이) 회사의 CFO를 거쳤다. 그만큼 경험이 풍부하고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사내에서는 말단 직원까지 찾아가 직접 면담하며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친화력이 좋아 국내외 금융기관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LG이노텍의 부채비율은 2013년 248%에서 지난 6월 말 131%로 줄었다. 자동차부품 사업 등에서 실적이 좋아진 덕도 있지만 그만큼 내부관리도 잘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김정대 전무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김홍기 LG하우시스 전무는 1987년 입사 이후 30년 가까이 화학업계에서만 근무했다. 그만큼 사업에 대한 이해가 깊다. 지난해와 올해에만 3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성공적으로 발행해 관리 능력을 인정받았다.

차동석 서브원 상무는 지주사에서 오래 근무했다. 서브원은 그룹과 사업관계가 밀접한 회사다. 그래서 서브원 CFO 자리는 그룹과 관계가 원만하고 신뢰도가 높은 사람만 발탁된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예정현 LG생명과학 상무는 회사의 재경 업무는 물론 구매, 전략, 경영관리를 총괄하고 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