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외환시장의 '담합자'들…유로 사려는 국내기업·은행에 '바가지'
JP모간 등 6개 글로벌 대형은행의 외환 트레이더들이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 동안 영국 런던 외환시장에서 유로·달러 환율을 조작해 부당이익을 거둔 것으로 지난 5월 밝혀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외신들은 ‘정의가 사라졌다’(이코노미스트) ‘리히터 10 규모 지진의 충격’(파이낸셜타임스) 등의 제목을 붙인 기사들을 쏟아내며 유로·달러 환율을 갖고 논 트레이더들을 비판했다.

미국 법무부 조사 결과 유로·달러 환율 조작에 가담한 트레이더들은 “환율을 조작하지 않는 것이 바보”라는 등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오로지 개인의 실적과 인센티브를 위해 움직였다. 피해는 그들의 고객인 기업과 신흥국 은행이 입었다.

◆환율 조작 피해는 고객 몫

6개 글로벌 은행의 외환 트레이더들이 유로·달러 환율을 조작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일부 트레이더가 ‘담합(the cartel)’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대화방을 개설한 것이 시초다. 알음알음으로 부하 직원이나 동료들을 대화방으로 모은 트레이더들은 자신들을 ‘한 팀(a team)’ 또는 ‘삼총사(the musketeers)’라고 지칭하며 거리낌 없이 유로·환율을 조작했다. 씨티 JP모간 UBS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글로벌 은행 소속이라서 거래를 원하는 기업 자금이 몰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트레이더들이 타깃으로 삼은 유로·달러 환율은 ‘ECB 픽스’(ECB fix·오후 1시15분 고시환율)와 ‘WM 로이터 픽스’(오후 4시 고시환율)다. 가령 오후 1시께 한 기업으로부터 “1억유로를 ECB 픽스 가격으로 사달라”는 주문을 받은 트레이더는 바로 온라인 대화방으로 그의 동료를 소집했다. 당시 유로·달러 환율은 유로당 1.50달러. 1시15분까지 유로당 1.51달러로 환율을 올리기로 합의한 트레이더들은 미리 유로당 1.50달러에 1억유로(약 1억5000만달러어치)를 사놓은 뒤 ‘환율 올리기 작업’에 착수했다.

계속해서 대규모 유로 매수 주문을 내면서 유로·달러 환율은 서서히 올라갔다. 1시15분 ECB 픽스는 유로당 1.51달러가 됐다. 트레이더는 이 환율을 기준으로 기업에 1억5100만달러를 받고 1억유로를 팔았다. 차액 100만달러는 트레이더가 챙겼다. 트레이더의 고객인 기업은 100만달러를 손해 본 셈이다.

미국 법무부와 영국 금융당국은 올 5월 6개 글로벌 은행에 총 56억달러(약 6조160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UBS가 자진해서 담합 신고(리니언시)를 했고 JP모간 씨티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순순히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레타 린치 미 법무부 장관은 “뻔뻔한 공모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작 환율 국내에서도 활용

한국의 공정거래위원위는 글로벌 은행들의 환율과 리보금리 조작 혐의를 모니터링하다가 지난달 미국 법무부의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달러 환율 조작으로 국내 은행과 기업도 피해를 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외국계은행 서울지점 포함)들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하루 평균 27억9500만달러(약 3조745억원) 규모의 유로·달러를 거래했다. 유럽지역으로 제품을 수출하거나 유럽 회사로부터 물품을 수입해 유로가 필요한 기업들의 요청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의 유로·달러 거래엔 홍콩 싱가포르 등 유럽이 아닌 아시아 외환시장의 환율이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정 수준은 유럽계 은행들이 제시하는 고시환율이 쓰였다.

한 시중은행 외환 트레이더는 “유로·달러 고시환율을 통해 거래되는 비중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며 “하지만 고시환율을 활용하는 거래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환율이 조작됐다면 국내 업체들도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외국환중개업체 관계자는 “오전에 고시하는 원·유로 재정환율의 기준환율은 로이터에서 가져온다”며 “기업들이 종종 고시환율로 유로를 사달라고 주문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미국에서 일정 부분 혐의가 입증됐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