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삼성출판사 등 자율규제기구 유통심의위와 대립각
"자사 이기주의 앞세운 대형출판사들의 고질병" 비판도

민음사 계열인 비룡소와 삼성출판사 등 대형출판사들이 잇따라 도서정가제 취지에 반하는 시장 행위에 나서며 출판업계 자율규제 기구인 유통심의위원회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자칫 어렵게 합의해 시행한 도서정가제 근본 취지가 퇴색되고 정가제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9일 출판업계에 따르면 비룡소의 북클럽 상품 '비버'와 삼성출판사의 '에버북스', 또 미래엔(구 대한교과서)의 아동용 도서 브랜드 '아이세움'의 세트도서 등 상품들이 실제 구성한 도서 정가보다 낮은 할인판매 방식으로 홈쇼핑 등 시장에 판매되면서 잇따라 유통심의위의 정가제 위반 심사 대상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당 출판사들은 일제히 도서정가제 규정을 어긴 적이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정가제에 따르면 도서 정가의 15%까지만 할인이 가능하지만 세트도서 재구성시 예외를 두는 규정 등을 앞세운 반발이다.

적법성 여부를 떠나 출판계 스스로 도서정가제 안착을 위해 만든 민간 차원의 자율규제기구이지만, 이를 떠받쳐야 할 주요 행위자들이 먼저 규제기구와 마찰을 빚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특히 최근 삼성출판사가 내놓은 '에버북스' 문학전집 30권은 공개 보도자료를 통해 특별 할인가 판매를 홍보해 도서정가제 취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 전집은 기존 도서의 판형을 달리했을 뿐 구간 도서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이지만, 출판사 측은 전 30권을 홈쇼핑 판매가 12만6천원에 내놓으며 양장본 권당 4천원꼴의 파격적인 할인가임을 앞세웠다.

각각의 책에는 정가 1만2천원이 명시돼있어 현행 정가제대로라면 31만6천원 이하로 판매가 불가능하지만 홈쇼핑 특가 이후에도 자사 온라인몰에서 14만원에 판매 중이다.

이 같은 전집 가격 할인은 현행 도서정가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사실상 정책 취지에 반하는 기존 할인판매 마케팅으로 회귀하는 행위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산업과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주요 출판사들의 홈쇼핑 판매 행위 등을 주시하고 있다"며 "현행법 규정상 정가제 위반으로 적용하기엔 시비가 있을 수 있으나 어렵게 만든 법 취지를 훼손하는 측면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유통심의위는 지난 8일부터 대형출판사들의 위반행위 여부를 점검하는 실사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변호사의 법률 검토 사항을 담은 답변서를 통해 항변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태세여서 법적 공방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출판학회 회장인 윤세민 경인여대 교수(영상방송학)는 "대형출판사들이 자사 이기주의를 앞세워 눈앞에 이익을 좇는 것은 문제"라며 "출판계의 고질적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추길 수 있어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출판사 정선주 본부장은 연합뉴스에 "도서정가제 취지 위배로 볼 여지가 있음은 인정하지만, 제작비와 개발비를 따져도 책값이 그렇게 비쌀 필요가 없기에 할인을 결정한 것"이라며 "책을 잘 접하지 않는 50~60대들이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만든 전집 구성"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jb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