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는 '태풍 속 항구'
글로벌 금융시장이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로화가 예상 밖의 투자 안전지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영향으로 지난 수년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던 유로화 가치가 최근 들어 이례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Fed)이 조만간 3차 양적완화의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로 미국, 일본, 신흥국 증시와 채권, 미국 달러와 일본 엔화 등 전 세계 투자자산의 가치가 크게 출렁이고 있지만 유로화는 이 같은 변동성 장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최근 2주일간 유로화 가치는 달러에 비해 4% 올라 지난 14일 1.3345달러에 장을 마쳤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소(CFTC)에 따르면 유로화 하락에 베팅하는 선물투자 규모도 지난 2주일 동안 90%나 줄어들었다. 최근 유로존 위기가 주춤해진 데다 유로화는 활발히 거래되는 글로벌 기축통화여서 안전자산으로서의 투자 가치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WSJ는 “유로화가 ‘태풍 속 항구’가 됐다”고 분석했다. 아무리 빈약한 항구(유로화)라도 태풍(변동성)이 몰아칠 때는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과 일본보다 통화완화 정책에 덜 적극적인 것도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다. 국채, 모기지채권 등 각종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는 보통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유럽 경제가 여전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유로화 강세는 수출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로화 상승세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적지 않다. 시카웰스매니지먼트의 제프리 시카 대표는 “경제 상황만 놓고 봤을 때 유로화는 약세를 보이는 게 맞다”며 “하지만 경제 펀더멘털과 관계없이 유로화 가치가 움직이고 있어서 트레이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