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작은 남자' 전문몰로 하이킥…"좌절할 시간도 아까웠죠"
‘키 작은 남자’는 가난했다. 2년제 전문대를 한 학기 남겨둔 채 그만두고 군 입대를 결정했다. 시급 1700원짜리 분식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버는 데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남자라는 이유로 시급을 100원 더 쳐주겠다는 분식집 주인의 말에 감격할 정도였다. 학교를 때려치우기로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어머니가 보내주는 등록금이 모두 빚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권명일 ‘키작은 남자’ 사장(29)은 모든 것이 풍요롭다는 대중소비시대에 가난과 결핍을 삶의 ‘에너지’로 삼아 자력으로 성공에 이른 청년 사업가다. 키작은 남자는 연매출 200억원을 올리는 남성의류 전문 쇼핑몰이다. 이곳에서는 소위 ‘위너’(키 180㎝ 이상 남자들을 이르는 속어)들은 옷을 살 수 없다. 오로지 키 180㎝ 이하 남성들을 위한 의류와 잡화를 판매한다.

그의 키는 171㎝. 세칭 ‘루저’급의 키는 아니지만 평소 키가 작은 사람들의 소비 패턴과 고민을 눈여겨본 것이 창업 아이템을 선택한 배경이다.

“군에서 전역하기 전에 돈이 많이 안 든다는 얘기를 듣고 온라인 쇼핑몰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이템을 물색하다가 저처럼 키가 작은 남자들을 위한 쇼핑몰을 열자는 생각을 했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빅사이즈 의류를 찾는 사람들처럼 스몰사이즈만 찾는 사람도 상당하더라고요.”

전역 후 6개월 동안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은 500만원. 판매할 옷은 일본에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부탁했다. 20여년 전 아버지와 사별한 어머니는 타지에서 홀로 사업을 하다가 외환위기 때 직격탄을 맞고 거의 모든 경제력을 상실했다. 권 사장은 “사전 정보 없이 막연히 일본 남자들이 옷을 작게 입을 것이라는 생각에 옷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건너온 옷들을 온라인에 올려 팔기 시작했다. 사업장이라고 해봐야 33㎡(약 10평)가 채 안 되는 단칸방이었지만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2006년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하지만 젊음이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사업이 점차 커지자 어머니가 보내주는 물량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그제서야 동대문시장 도매상가에 옷가지를 떼러 갔다. 수많은 소매업자를 대해 본 도매상들은 나이 어린 사장과 거래하기를 꺼렸다. 평소 안정적인 판매가 가능한 곳과 거래하던 그들은 매장도 없는 곳에 물건을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가격이 싼 온라인시장에 제품을 공급할 경우 오프라인 쪽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도 작용했다. 권 사장은 “온라인몰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전이라 인식이 좋지 못했다”며 “옷을 사기 위해 도매상에게 1시간 동안 매달린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거래처를 확보하자 하루 1~2상자에 머물던 주문 물량은 점차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몰사이즈’ 전문 패션쇼핑몰이 흔치 않았던 데다 키높이 신발, 깔창 등 키 작은 남자들을 위한 아이템을 특화한 것이 적중한 덕이다. 권 사장은 “매출이 늘면서 ‘지붕뚫고 하이킥’ ‘얼짱시대’ 등 인기 TV 프로그램의 제작 지원도 병행하자 인지도가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몰을 연 지 5년이 지난 지금, 키작은 남자에서는 한 달에 2만건 이상의 주문을 받고 있다. 고정 거래처도 여럿 두게 됐다.

젊은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산 게 아니냐는 질문에 권 사장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불평을 하기에는 삶이 너무 바빴거든요. 좌절하고 냉소할 시간에 열심히 살았던 거죠.”

취직이 어려워 힘들어하는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도 조심스레 꺼냈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저희는 직원을 구하기가 힘듭니다. 회사 규모가 작고 연봉도 높지 않으니까요. 또 일단 채용을 해도 금방 퇴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꾸준히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20대 젊은이들의 근성과 도전정신이 아쉽다는 얘기를 사람을 뽑아야 하는 자리에 있으니 느끼게 됩니다.”

권 사장의 꿈은 키작은 남자를 매출 100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의 회사는 최근 본사가 있는 대구시로부터 청년고용우수기업 표창을 받기도 했다. 권 사장은 “직원을 채용할 때 학벌이나 스펙은 보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내 또래의 직원들이 계속 다니고 싶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키 작은 청년이 새삼 커보이는 순간이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