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청와대 재계 총수 회동 전후해 '기부 붐' 전망

재계의 통큰 기부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며 우리 사회에도 가진 자가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 문화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범(汎) 현대가 그룹사들이 공동으로 5천억원 규모의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키로 해 화제를 모은 지 2주 만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거액의 사재를 추가 출연키로 해 '신선한 충격'을 안기자 사회 공헌 사업이 재계 전반으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8일 "정몽구 회장이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미래 인재 육성에 기여하기 위해 사재 5천억원을 출연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순수 개인 기부 규모로는 사상 최대 금액으로 정 회장의 출연은 5천억원 상당의 현대글로비스 보유 주식을 해비치 사회공헌문화재단에 기부금으로 추가 출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로써 현대차그룹을 포함한 범현대가는 2주만에 총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출연키로 해 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서는 기업이라는 인상을 확실히 각인시키게 됐다.

특히 범현대가의 경우 사회공헌 활동의 주체로 기업이 아닌 개인이 나섬으로써 재계 기부문화의 새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아산나눔재단에 사재를 출연한 것에 대해 "굉장히 잘한 것"이라고 칭찬한 것으로 알려져 오는 31일 30대 그룹 총수의 청와대 회동을 전후해 이와 같은 사재 출연이 붐을 일으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에 범현대가가 기부 문화의 최일선에 서고 있지만 그동안 국내 주요 기업은 세계 어느 기업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사회 공헌 활동을 해왔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은 1965년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 보존과 문예 진흥 활동을 펼친 것을 시작으로 삼성복지재단, 삼성생명공익재단, 호암재단, 삼성언론재단, 성균관대학교와 중동학원 등을 설립해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의 활동 범위를 넓혀왔다.

복지·문화·교육·환경·언론 등 분야별로 전문화된 5개 공익재단을 통해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LG는 지금까지 재단에 출연된 금액은 4천600억원이며 소요된 사업비는 총 7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복지재단의 경우 저소득층 및 각종 사회복지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1991년 설립됐으며, 2007년 12월부터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연간 15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매년 1개 보육시설을 지방자치단체에 기증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SK의 경우 행복나눔재단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행복 도시락' 사업과 '행복한 학교' 사업, 대학생자원봉사단 '서니(Sunny)' 사업 등을 통해 취약계층의 자립과 자활을 돕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77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설립한 이후 30여년 동안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한 문화 예술, 학술 연구, 교육 사업 등에 공헌해왔다.

한진해운은 시가 900억원 상당의 고(故) 조수호 회장의 개인보유 주식을 출연해 2006년 양현재단을 설립, 해운산업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 사업과 희소병 어린이 환자에 대한 의료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 한진그룹이 일우재단을 만들어 젊은 미술가 후원 등 문화ㆍ학술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그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이들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기업이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아 록펠러 가문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에 이르기까지 기업인 개인이 자산의 재산으로 기부활동을 펼치는 외국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미국 등 외국과는 달리 기업인 개인의 기부가 활발하지 못한 데는 세제 등 정책적인 문제도 있지만 개인 재산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의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범현대가의 거액 기부로 이 같은 풍토에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기대했다.

재계는 2주전 범현대가가 5천억원을 출연해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기로 한 직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5천억원 사재 기부까지 이어지자 다음은 어떤 기업이 바통을 넘겨받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얼마 전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미국 정부에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주장한 데 이어 최근 로레알 상속녀 등 프랑스 부호들이 국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세금을 더 내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가진 자,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범현대가와 현대차의 통큰 기부로 탄력을 받은 재계의 사회 공헌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