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 중인 TV 드라마 '파스타'에서 주인공 최현욱(이선균 분)이 몰고 나온 BMW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6'가 보는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눈썰미 좋은 시청자들은 굳이 로고를 들여다 보지 않아도 이 차가 BMW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람의 2개 신장(腎臟) 모양과 닮아 '키드니 그릴(Kidney grill)'이라는 별칭이 붙은 특유의 라디에이터 그릴 덕분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함께 전세계 고급차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독일 BMW의 상징인 이 그릴은 70년이 넘는 역사를 담고 있다.

BMW는 1917년 바이에른주의 중심지 뮌헨에서 항공기엔진 제조업체 BFW를 운영하던 칼 라프와 설비업체 바이에리쉐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 · 바이에른의 엔진제작소)를 운영하던 개발자 구스타프 오토가 합작해 만들어졌다. 출범과 함께 회사명을 약자인 BMW로 바꿨다. 이 이름이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본사도 뮌헨에 있다.

BMW는 항공기 엔진과 모터사이클을 거쳐 1928년부터 자동차 분야에 진출했다. 초기에 항공기 엔진을 주력으로 생산해 비행기 프로펠러 모양이 로고의 기본 형태로 남게 됐다고 한다. 로고에 사용된 파란색과 흰색은 BMW 본사가 있는 독일 바이에른주의 고유 색상이다. 주의 상징색깔에 프로펠러를 합쳐 현재의 로고가 탄생했다. 이름이나 로고 모두 BMW의 본거지인 바이에른주의 상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로고는 '하늘에서 땅으로' '두 바퀴에서 네 바퀴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BMW의 또 다른 상징인 '키드니 그릴'은 77년에 걸쳐 BMW의 최신 차량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25일 한국 시장에 출시한 소형 SUV 'X1'과 상반기 출시될 '신형 5시리즈'의 디자인에도 한층 더 비대해진 키드니 그릴을 적용했다.

지금은 BMW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 이 그릴은 자칫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를 고비를 넘겼다. 좌우로 나뉜 독특한 모양의 키드니 그릴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BMW가 1933년 베를린모터쇼에 6기통 중형세단 '303 시리즈'를 출품하면서부터다.

BMW가 처음부터 이 그릴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31년 일(Ihle) 형제가 시험 삼아 소형 로드스터(지붕이 없는 2인승 자동차)에 처음으로 키드니 그릴을 적용했으나 BMW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차는 아니었다. 이후 1932년 BMW에 합류한 수석 디자이너 프리츠 피들러가 일 형제의 디자인을 차용하며 키드니 그릴은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BMW가 재정적자로 인해 부침을 겪던 1959년,키드니 그릴은 존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세계 제2차 대전 종전 후 연합국으로부터 생산 금지 명령을 받기도 했던 BMW가 산고 끝에 출시한 '700'에서부터 키드니 그릴을 생략하자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대주주였던 헤르베르트 콴트는 "기존 그릴 형태를 고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며 그릴의 고유 형태를 이어갈 것을 주장했다. 이후 50여년 동안 BMW는 이 그릴을 신성화하다시피하며 출시하는 모든 차량에 적용했다.

키드니 그릴의 수호가 있었던 것일까. 1959년 이후 지금까지 BMW는 단 한 해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지난해 유럽 자동차시장에서는 전년 대비 4.9% 증가한 총 69만5007대(미니 포함)를 판매해 경쟁업체인 메르세데스벤츠(67만6276대 · 스마트 등 포함)와 아우디(60만201대)를 제치고 고급차 메이커 중 1위를 차지했다. 이같은 실적이 모두 키드니 그릴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BMW를 보다 쉽게 알리기 위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BMW는 올해부터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조이(JOY) 마케팅'에서도 이 그릴을 전면적으로 내세웠다. 독일 뮌헨공항은 물론 서울 코엑스에만 가도 원래 크기의 수십 배로 확대된 키드니 그릴의 웅장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BMW라는 브랜드를 꾸며주는 다양한 수식어들이 있지만,결국 홍보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키드니 그릴을 지목한 셈이다.

이진석 한경닷컴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