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이 명운을 걸고 뛰어든 하이닉스반도체[000660] 인수 시도가 결국 불발로 그치면서, 대형 매물 하이닉스 매각 작업이 다시 표류하게 됐다.

12일 금융계와 산업계에 따르면 하이닉스 인수전에 단독 참여한 효성[004800]은 이날 하이닉스 인수 의사를 공식 철회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22일 효성이 인수 의향서를 단독 제출한지 2개월도 안된 시점이다.

채권단 역시 효성과의 인수.합병(M&A)를 공식 종료하고 매각작업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최근 들어 M&A 매물들이 쏟아지고 있어 하이닉스 매각 작업은 내년 중에도 재개되기가 쉽지 않아 장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효성, 자격 시비.내부 의혹 등으로 삐걱
효성의 하이닉스 인수 계획은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드는 시기와 맞물려 총수 일가의 해외 부동산 매입과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 특혜 시비 등이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채권단도 이런 상황을 고려해 두 차례에 걸쳐 인수제안서 접수 마감일을 연장해줬다.

어차피 경쟁자도 없는 상황에서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의 내홍을 겪고 있는 효성에 다소나마 말미를 줌으로써 매각 성공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의지에서였다.

효성 역시 매각주간사와 비밀유지동의서(CA)를 체결하는 한편 실사 등을 위한 회계법인과 법무법인까지 정해놓고 하이닉스 인수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효성은 그러나 특혜시비와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의 내부 문제 등으로 번번이 하이닉스 예비 인수제안서를 접수하지 못했다.

이달 16일까지 보름가량의 말미를 더 얻은 효성은 결국 이날 공시를 통해 매각 철회 의사를 밝힌 것.
효성은 이날 "하이닉스 인수와 관련해 특혜시비 등 사실무근인 시장의 오해와 억측, 루머 등으로 인해 공정한 인수 추진이 어렵게 돼 인수의향 철회라는 안타까운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금융계 고위관계자는 "효성이 인수 의지는 있으나 특혜시비와 비자금 조성 사건 등으로 하이닉스 인수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효성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인수전에 나서는 것보다 추후에 나서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매각 장기화하나
하이닉스 주식관리협의회 주관기관인 외환은행도 일단 하이닉스 M&A 관련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에 따른 특혜시비 등의 사유로 하이닉스 인수 의향을 철회함에 따라 더는 효성과 M&A를 진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자문사단 및 주주협의회와 협의를 거쳐 재무 및 경영 능력을 보유한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재매각 공고를 내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공개경쟁 입찰 방식을 통해 M&A 등을 재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효성 역시 이번에 실패했지만 언제든지 다시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러나 채권단과 금융계는 하이닉스 재매각은 내년 하반기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들어 시장에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조선해양 등의 대형 기업 매물들이 쏟아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이날 대우조선해양[042660]에 대해 내달부터 재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 회장은 "기업의 발전을 위해 매각시기를 늦출 수 없다"며 "내달 중 매각주간사를 선정해 내년부터 매각 작업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더구나 국내 대기업들 중에 하이닉스 인수에 나서는 곳이 별로 없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히고 있다.

앞서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하이닉스 매각 문제는 채권단이 알아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일단 채권단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며 "다만 하이닉스 인수자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유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국가적으로 영향력이 큰 기업의 주식을 매각할 때는 가격보다는 인수자의 능력과 진정성 등의 자격 요건을 따져 매각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외환은행 등 일부 주주들은 하이닉스를 조기에 매각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하이닉스 매각을 원하는 주주 중심으로 비공식적으로 여러 잠재적 매수자 물색에 나설 것"이라고 언급했다.

◇ 하이닉스, 영업 호조로 유동성 이상無
이처럼 매각 무산에도 불구하고 하이닉스는 최근 영업 호조 등으로 그나마 충격을 최소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하이닉스는 D램 등의 가격 상승으로 실적이 개선돼 기업 가치도 상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이닉스는 올 3분기에 2천90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8개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액도 2조1천180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26% 증가했다.

하이닉스는 후발업체와의 기술 격차를 확대할 예정이며 내년 시장 전망도 나쁘지 않아 당분간 실적 호조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D램 가격 상승과 영업 호조 등으로 올해 말까지 약 1조5천억 원 가량의 현금성 유동성 자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매각 무산으로 인한 악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기자 indig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