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부담해야 할 4조원 규모의 대우건설 풋백옵션(인수자가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을 재무적 투자자(FI)에게 전액 상환하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8일 "대우건설의 풋백옵션을 보유한 재무적 투자자 중 상당수는 대우건설의 주주이자 금호의 채권단"이라며 "손실분담 원칙에 따라 금호가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한 데 따른 부담을 나눠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채권단도 높은 수익률만 좇아 무리한 인수합병(M&A)에 편승한 책임이 있다"며 "대우건설 매각이 성공하더라도 그 과실이 고스란히 재무적 투자자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금호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금호에 투자자와 개별협상을 통해 옵션 행사가격의 인하 등을 유도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대우건설 매각이 재무적 투자자의 호주머니만 부풀리는 것으로 귀결돼서는 곤란하다"며 "최소한의 '헤어컷'(hair cut · 옵션 가치의 평가절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이는 금호의 유동성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풋백옵션의 만기연장을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재무적 투자자로는 미래에셋 사모펀드(6100억원),국민은행(3000억원),신한은행 · 캐피탈(1200억원),대우증권(2000억원) 등 17개 금융회사 및 사모펀드가 참여했다. 외국 투자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투자회사가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받아야 할 채권을 깎아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금융당국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권 인사는 "옵션행사 가격을 낮추자는 것은 금호 측의 옵션 디폴트(불이행)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금호의 유동성 악화에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지적은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가지만 법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옵션행사 가격 인하를 주장하는 금호와 금호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바라는 금융당국이 한편에 서고 투자자들이 다른 편에 서서 막판까지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대우건설 풋백옵션=대우건설 인수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가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권리다. 금호 측은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한테 3조5290억원을 끌어들여 대우건설 지분 39.63%를 인수하면서 풋백옵션을 줬다. 3년 뒤인 올해 12월 이후 대우건설 주가가 인수가격(주당 2만6260원)에 연 복리 9%의 수익률을 더한 기준가격(3만2500원)에 못 미칠 경우 투자자가 보유한 대우건설 주식을 기준가격에 되사주기로 했다. 현재 1만5000원 안팎인 대우건설 주가를 감안할 경우 금호 측이 옵션 처리를 위해 부담해야 할 금액만 4조원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