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신흥시장(이머징마켓)을 덮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대만 등의 신흥국들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기침체를 어느 정도 막아내줄 수 있는 '보루'로 여겨졌지만 상황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최근 발표된 일련의 경제지표들은 지난해 말부터 신흥국 경제가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상당수 국가들의 무역과 산업생산 증가 속도가 뚝 떨어졌고 내수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날 파이낸셜타임스(FT)도 "아시아 지역 경기침체 속도와 강도가 비관론자들마저 놀라게 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는 물론 남미와 동유럽 국가에서도 경기침체가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만의 지난 1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4%나 급감,2005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지난해 12월 광공업생산은 18.6% 감소,197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브라질의 12월 산업생산도 전월 대비 12.4% 줄었다. JP모건은 한국 대만 러시아 터키 멕시코 등을 포함해 적어도 11개 신흥국이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경제 상황 악화로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도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원화 가치는 올 들어 달러화 대비 8% 하락했다. 러시아 루블화와 헝가리 포린트화 가치는 14%씩 떨어졌다. 지난주 멕시코 페소화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월지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수출 덕분에 1997~1998년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수출시장이 경기침체에 빠져 있어 당시와 같은 상황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무디스도 이날 발표한 '아시아 · 태평양 지역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아 · 태 지역도 글로벌 경기후퇴에서 예외일 수 없다"며 "특히 △홍콩 · 싱가포르 등 금융허브 △일본 한국 대만 등 전자 · 자동차 위주 수출국 △호주와 같은 원자재 수출국이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