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부담 여전한데 … " 불만

정부는 13일 과천 정부청사에서 민생안정 차관회의를 열고 원료값이 비해 최종 판매가격 하락이 더디게 진행되는 품목에 대한 가격 점검을 강화하고 생산 업체가 가격을 낮추게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시장 현실과 동떨어진 '가격 통제'가 우려된다며 부당한 압력을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원가 분석 담합조사…전방위 압박

최근 현물시장에서 고철은 지난해 6월(t당 68만원)보다 59% 떨어진 가격(t당 28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고철을 주원료로 하는 철근 시세는 t당 102만1000원에서 82만1000원으로 19.6% 내리는 데 그쳤다는 게 정부 합동가격점검반의 조사 결과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관 부처와 기획재정부 물가정책 부서,소비자단체협의회 등을 총동원해 가격 인하 요인이 제때 반영되도록 유 · 무형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정부는 1차 조치 대상으로 수입 원자재 비중이 큰 생필품과 독과점적 시장 구조를 갖고 있는 품목을 지목했다. 관계 부처 합동으로 가격 모니터링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제 원자재 가격 및 환율 하락분의 국내 제품가격 반영 여부를 월 2회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52개 생활필수품(일명 'MB 품목')은 가격 동향을 상시 점검한다. 소주 세제 오렌지주스 등 장바구니 물가의 핵심이면서 연초부터 5~15%가량 오른 품목들도 집중 점검 대상으로 꼽힌다.

소비자단체협의회에 기업원가분석팀을 구성해 가격을 제때 내리지 않으면 소비자단체들의 공동 대응을 유도키로 했다. 민간 부문의 자율적인 대응이라지만 정부가 막후에서 조율할 것으로 보여 업체들로서는 적잖은 부담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철근처럼 원자재값 하락이 잘 반영되지 않는 품목에 대해서는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고 처리도 못하고 있는데…"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철근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고철 가격 동향만 놓고 철근 가격을 내리라고 하는 것은 실정을 너무 모르는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업체들은 우선 재고 부담을 꼽는다. 대형 철강회사들은 대부분 원재료를 장기 계약으로 들여오기 때문에 작년에 비싼 값에 사들인 고철 재고가 창고에 가득하다는 것이다. 고철 값이 떨어지는 것은 현물시장의 동향일 뿐이라는 얘기다. 수요 감소로 생산량을 줄이면서 재고 소진 속도마저 더뎌졌다.

수요 감소에 따른 각종 할인 판매로 실제 거래가는 시세보다 낮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t당 82만원 선에 공급가를 책정하고 있지만 실제 건설회사들이 철근을 사가는 가격은 70만원대 중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연초 릴레이 가격 인상으로 정부의 점검 대상으로 꼽힌 식품업체들도 원가 부담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원자재값이 떨어졌지만 환율이 30% 이상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가격을 낮출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차기현/안재석/김진수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