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호황을 구가해온 석유화학업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나프타의 가격 급등으로 원가부담이 가중된 데 이어 하반기 이후에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생산단지인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전체 60개 공장 가운데 비닐 타이어 섬유 등의 기초원료로 사용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만드는 나프타분해공장(NCC) 한 곳이 지난해 10월27일 가동을 멈췄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수요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공장 가동이 중단된 것은 1962년 창사 이후 46년 만에 처음이다. 이 공장은 지금도 멈춰 서 있다.

◆"수요 위축 파고를 넘어라"

석유화학산업은 나프타 등 석유를 원료로 자동차 가전 건설 섬유 등에 필요한 각종 기초소재를 만들어 공급하는 핵심기간산업이다. 생산액(2007년 47조원) 기준으로 국내 4위 산업이다. 수출은 2007년 288억달러로 우리나라 총 수출의 7.8%를 차지했다.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 등 주요 시장의 수요가 둔화되고 신규설비 증설을 마친 중동지역에서 저가 유화제품을 앞세운 물량공세를 펴면서 채산성이 나빠졌다.

최근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국내외 실물경기 악화로 큰 어려움을 겪고있다. 여천NCC 등 국내 나프타 생산업체 7곳의 영업이익률은 2007년 8%에서 2008년 1~3분기 5.5%,4분기 1.4% 등으로 급락했다.

2008년 1~10월 석유화학 수출액은 수출단가 상승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2% 증가한 289억달러를 기록했다. 그러나 수출물량은 2008년 2분기 이후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의 수요 부진으로 감소세로 돌아서 수출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글로벌 시장개척에 '올인'

석유화학업계는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위축과 공급과잉 및 경쟁 심화 등으로 올 한 해가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글로벌 시장 공략을 통해 불황을 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석유화학업계의 해외 직접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2005년 1억4900만달러에서 2007년 3억8900만달러로 늘었고,지난해 상반기에는 2억600만달러를 기록했다.

호남석유화학과 SK에너지는 에틸렌 및 관련제품 생산 설비를 세우기 위해 중동 카타르와 중국 우한에 각각 26억달러,19억달러를 투자했다. 한화석유화학은 PVC 등을 생산하기 위해 중국 닝보에 36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아프리카 중남미 등 신흥 시장으로의 수출을 늘리는 데 힘쓰고 있다. LG화학은 현재 중국 인도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15개국에 생산ㆍ판매법인과 지사를 두고 석유화학,산업재,정보전자소재 관련 제품을 160여개국에 팔고 있다.

LG화학은 외환위기 이후 중국과 동남아 위주의 수출시장에서 벗어나 남미와 아프리카 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국 이외의 브릭스(BRICs) 국가인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신흥 시장으로의 수출 확대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삼성토탈도 공격적으로 수출에 나선다. 삼성토탈은 올해 전체 예상매출 5조5000억원 중에서 수출이 70% 이상(3조8000억원)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될 정도로 수출 비중이 높다.

기존 합성수지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시장에서 벗어나 일본 남미 동남아 등 신규시장을 뚫는 등 수출지역을 다변화시켜 수출 비중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수급여건 개선,희망은 있다.

최근 몇 년 간 대규모 화학단지 조성과 증설 등으로 세계 석유화학시장에 큰손으로 떠오른 중동 기업들은 완공된 공장의 가동시기를 늦추거나 추진 중인 석유화학단지 조성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2008년 대위기론'의 진앙지로 꼽혔던 중동발(發) 악재가 일단 소멸되면서 국내 화학기업들로선 불황을 헤쳐 나갈 기회를 맞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관련,국내 최대 NCC(나프타크래킹)업체인 여천 NCC가 지난해 12월9일 21일간의 셧다운(가동중단)을 끝내고 제3공장을 재가동했다.

지난해 11월 이후 회사별로 10~30% 감산에 들어갔던 LG화학 삼성토탈 호남석유화학 등도 글로벌 수급여건 개선과 중동지역 공급지연 등을 감안해 감산 비율을 줄이거나 조기 정상가동을 검토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중동의 생산연기는 국내업체들에 중국 등 글로벌시장을 집중 공략할 시간을 벌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감산 도미노'현상이 전 세계 석유화학업계로 확산되면서 일부 제품의 주문량이 늘어나는 등 수급여건이 차츰 개선되고 있는 점도 국내 업체에는 호재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