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弗이상 신용장 개설 중단 … 원자재ㆍ부품 재고 '바닥'

은행들이 외화 유동성 관리를 위해 중견ㆍ중소기업들에 대한 무역금융을 사실상 거부,해외에서 원자재와 설비 등을 들여오는 제조업체들이 조업 중단 위기에 몰렸다. 수출기업들도 은행들의 매입외환 축소로 대금 회수가 불투명한 외상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일부 유동성이 좋은 그룹을 제외한 중견ㆍ중소기업들의 경우 건당 100만달러가 넘는 해외 원자재나 부품,생산설비 도입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은행들이 연말까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입신용장(LC) 개설을 극도로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그룹에 속한다 하더라도 신용도가 낮은 계열사들은 신용장 개설을 하지 못하거나 금액이 깎이는 바람에 현금으로 수입 대금을 결제해야 할 판이다. 수도권 공단의 한 관계자는 "100만달러는 고사하고 건당 5만달러의 신용장 개설도 힘들다"며 "연말까지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원료와 자재 부족으로 정상적인 가동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건당 수천만달러어치의 원유를 도입하고 있는 정유사들 역시 은행들이 수입 유전스 개설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 자체 원유 비축량이 속속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사들은 임시 방편으로 원유 수출업자들에게 자신들의 채무를 매입해주는 형태의 신용장(Shipper's Usance) 개설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도입 단가와 금리 비용이 급등해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수출기업들도 은행들이 수출신용장 개설이나 수출환어음 매입을 거절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외상 수출을 늘리고 있다. 은행들은 특히 국가신인도가 낮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지역 등에 대한 수출계약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얼마 전까지 90일 이하짜리만 대금을 결제해주던 수출환어음 기간도 최근에는 60일 이하로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절반만 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연 매출 5000억원 상당의 화학회사 관계자는 "요즘은 유럽 바이어들까지 물건을 팔아서 사후에 대금을 지급하겠다는 판"이라며 "외상 매출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