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빌딩 15층.


삼성전자 휴대폰 디자인팀(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디자인팀)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함부로 사람이 들어갈 수도,나갈 수도 없다.


최고의 정보인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삼성 휴대폰의 디자인 정보라면 세계 특급 정보다.


엄격한 보안과 직원의 안내를 거쳐 들어간 15층.


방문객들은 철저한 보안과 너무도 다른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놀란다.


턱수염 기른 사람,진하게 머리염색 한 사람,청바지 입은 사람,어지럽게 널려있는 컬러 작업용 색종이와 물감들,금형을 뜬 시제품 등.


세계 최고의 디자인팀이 일하는 곳이라곤 믿기지 않는 느낌을 준다.


사설 미술작업실 같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엄격한 보안과정을 까맣게 잊게 한다.


휴대폰이 주는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바로 이곳에서 삼성휴대폰의 신화를 창조한 실력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삼성의 대표적인 히트모델인 일명 '이건희폰(SGH-T100)'의 디자인을 주도한 디자인팀장 윤지홍 전무(50).


윤 전무는 디자인실 분위기에 대한 설명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디자인은 창의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복장도 근무방식도 모두 자유로워야 합니다."


그의 설명은 너무도 단순했다.


윤 전무는 "디자인팀 사무실이 삼성전자 본사인 태평로 사옥에서 굳이 떨어져 있는 이유도 경직된 사고방식과 정형화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선디자인 2그룹장을 맡고 있는 황창환 수석 디자이너(45).


1992년 애니콜 신화창조의 효시모델(SH-700)을 디자인한 주인공이다.


당시 이 제품은 한국인의 체형과 감성에 맞게 독자적으로 디자인한 최초의 제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87년 입사한 황 수석은 당시만 해도 삼성에서는 허용하지 않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튀어도 너무 튀었던 것.결국 '코털'이라는 별명을 얻어 사내 저명인사가 됐다.


그는 국내 최초의 디자이너 출신 최고경영자(CEO)가 되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1989년에 입사한 김남미 책임디자이너(37)는 지난해 화제를 모았던 최초의 가로본능폰(SCH-V500)과 2001년 최초의 여성용 휴대폰 '드라마폰(SGH-A400)'을 디자인했다.


그는 "미래의 휴대폰은 하이테크 이미지와 패션성이 강한 디자인이 요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각과 촉각을 뛰어넘어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휴대폰을 디자인하겠다"는 포부다.


삼성자동차에 근무했던 이민혁 책임디자이너(34)는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답게 '벤츠폰(SGH-E700)'을 디자인해 냈다.


벤츠 자동차 모양으로 디자인된 벤츠폰은 전세계적으로 1천만대 이상 팔리고 있는 명품이다.


그는 벤츠폰을 디자인하기 위해 게임도 하고 로봇도 만드는 등 머리를 비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잡념이 많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나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그는 "생리학적으로 디자이너는 밤을 사랑하며 나 또한 새벽에 아이디어가 많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박지윤 책임디자이너(33)는 삼성의 모바일 컬러전략과 컬러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유럽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블루블랙폰(SGH-D500)의 컬러는 그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사내커플이자 남편도 디자이너인 그는 "향수나 화장품 시계 등에서 색깔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는 편"이라며 "신랑과 잠자리에 누워서도 컬러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휴대폰 디자인팀은 이들 '5인방'을 포함해 수백명(구체적인 디자이너 숫자는 기업비밀)에 달한다.


이들이 한햇동안 디자인하는 제품은 4백여개 모델이다.


이 중 약 1백30개 모델만 출시되고 나머지 제품은 아이디어 축적차원에서 '디자인뱅크'로 넘어간다.


1998년 기네스북에 오른 시계모양의 '워치폰'과 풍선처럼 생긴 충격완화폰, 튜브모양의 휴대폰, 웨어러블 휴대폰 등이 사내 '디자인뱅크'에 예치돼(?) 있다.


디자인뱅크와 함께 대학생 동아리 '삼성디자인멤버십'도 삼성전자에 창의력을 공급하는 원천 가운데 하나이다.


삼성전자가 11년째 지원하고 있는 삼성 디자인멤버십은 각 대학의 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참여하는 동아리로 그동안 1백여명의 디자이너를 배출했다.


이 멤버십은 일본의 소니와 마쓰시타 도시바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성공적이다.


박지윤 책임디자이너가 삼성디자인멤버십 2기생이다.


윤지홍 전무는 "삼성 애니콜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것은 폴더형 디자인을 개발한 데서 비롯됐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휴대폰업체 노키아가 바타입 휴대폰(길쭉한 모양)을 고집할 때 삼성은 폴더형을 개발,카메라 스피커 블루투스 등 멀티미디어로 진화하기 좋은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삼성이 휴대폰의 경박단소(輕薄短小)와 멀티미디어화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삼성전자 휴대폰 디자인팀은 최근 하부조직으로 제품디자인팀과 컬러디자인팀 이외에 'HI(휴먼 인터페이스)팀'을 신설했다.


모바일 컨버전스와 유비쿼터스 라이프에 맞는 휴대폰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팀이다.


자유로운 분위기와 인적투자가 바로 삼성 휴대폰 디자인팀의 경쟁력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