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쓰는 돈만 따져도 연간 1조3천억원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반기업 정서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으니…."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상무)은 국민들의 반기업ㆍ반시장적 정서가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는 이번 조사 결과를 접하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개탄했다. 기업과 기업인을 죄악시하는 풍토 속에서 어느 누가 창업 대열에 나서겠으며, 어느 기업이 투자를 늘려 고용을 창출하겠느냐는 걱정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반기업 정서가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는게 이 상무의 분석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반기업ㆍ반시장적 정서를 치유하지 않는 한 한국 경제가 남미형 경제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기업에 호감 없다 전체 응답자의 17.5%만 기업에 대해 호감을 표시했을 뿐 나머지는 '그저 그렇다(58.7%)'거나 '안좋게 생각한다(23.7%)'고 답했다. 특히 학력과 소득이 낮을수록 뚜렷한 반기업 정서를 갖고 있었다. 이같은 반기업 정서는 최근 일련의 조사와 맥을 같이한다. 지난달 28일 한국능률협회가 국내 1백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반국민이 느끼는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호감도는 1백점 만점에 각각 55점과 40점 수준이란 응답이 나왔고,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세계 22개국 8백80개 기업 CEO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한국기업 CEO의 70%가 '한국 국민들 사이에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고 답해 한국이 가장 반기업 정서가 심한 나라로 꼽혔다. 응답자들은 반기업 정서의 원인으로 △정경유착(52.3%ㆍ복수응답) △족벌경영(37.6%) △불투명한 경영관행(37.6%) △열악한 근로조건(27.6%) 등을 꼽았다. 특히 '386세대'로 분류되는 30대와 40대 초반은 우리 기업의 최대 약점으로 정경유착(55.2%)과 족벌경영(42.8%), 불투명한 경영관행(46.8%)을 꼬집는 응답을 더 많이 내놨다. 반면 20대는 열악한 근로조건이 더 문제라는 현실적인 답변을 제시했다. 30,40대는 기업의 일자리 창출 노력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라는 평가(각각 52.2%, 50.4%)를 가장 많이 내렸다. 이는 취업 당사자인 20대(42.7%)와 취업연령 자녀를 둔 50대 이상(34.6%)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오문석 LG경제연구원 상무는 "기업에 대한 적대의식이 20대보다 30대와 40대에 더 확산돼 있는 것 같다"며 "기성 제도권과 맞서온 이른바 민주화 세대의 의식이 '삼팔선' '사오정' 등으로 나타나는 고용불안과 맞물리면서 반기업 정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시장경제 마인드 턱없이 부족 기업이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이윤창출을 꼽은 국민이 9.1%에 그친데 대해 재계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근로자의 복지와 발전(45.7%), 이윤의 사회환원(32.1%), 소비자의 후생 향상(12.7%)이라는 주객전도의 응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경제신문과 삼성경제연구소가 중ㆍ고생 1천2백7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11.8%가 이윤 획득을 기업하는 목적으로 꼽았던 것에 비춰보면 기성세대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중ㆍ고생보다도 못한 셈이다. 설문 결과를 분석한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용수 주임연구원은 "'기업이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란 생각에 기업의 기본 목적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교육을 강화하는게 절실하다"고 말했다. 기업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기업 스스로의 노력(29.2%)'보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51.5%)'이라고 답한 국민이 훨씬 많다는 점도 관치경제에 익숙해 시장경제의 원칙을 잘 모르는 결과라는게 KDI측의 분석이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경제의 주체이자 핵심은 기업인 데도 많은 국민들은 '경제는 정부 주도로 움직인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업인에 대한 왜곡된 시각 응답자들은 기업 소유주에 대해 '싫어하지만(65.6%)' '기업 발전에는 기여한다(58.9%)'는 평가를 내렸다. 반면 전문경영인에 대해서는 65.7%가 호감을 갖고 있으며,기업 발전에 기여한다는 응답도 79.3%에 달했다. 특히 30대의 70%는 오너를 싫어하는 대신 전문경영인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같은 결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업 오너경영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온 정치권의 인기 영합주의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며 "전문경영인은 무조건 좋고 오너경영인은 기업 발전에 대한 기여와 관계없이 나쁘다는 인식은 기업가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를 따지기 앞서 '부자는 무조건 싫다'는 식의 반응은 경제성장을 억누르고 사회갈등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