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이틀째인 11일 한국 등 9개국(G-9) 대표들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각료회의 선언문초안에 올라있는 관세상한 설정과 저율관세 의무 수입량(TRQ) 증량 조항을 삭제해야한다는 내용의 농업부문 공동 수정안을 발표했다. G-9 대표들은 "선언문 초안에는 이른바 비교역적 관심사항(NTC) 요소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선진국에 대해 관세상한을 설정해 상한선까지 감축토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TRQ 증량을 하도록 규정한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들은 또 "추후 관세상한 설정 여부를 계속 협상토록 한 개도국에 대해서도 TRQ 방식과 관세인하를 조합해 시장접근을 달성해야 한다는 식으로 구체적 방법을 적시한 조항을 전제로 협상이 이뤄져서는 안된다면 이 또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견에 참석한 허상만 농림부 장관은 기조발언을 통해 "농업이 지니는 사회적 기능을 고려할 때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민의 확고한 생각"이라면서 "WTO는 각국 농업의 공존을 위한 장이지 무역자율화만을 전제로 환경이 불리한 국가의 농업을 희생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허 장관은 또 "관세상한을 설정하는 경우 수입국의 농업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고 TRQ 증량조항도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다"면서 "수출국과 수입국 입장을 균형있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관세상한이나 TRQ 증량의무가 없는 순수한 UR방식이 적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허 장관은 대만, 일본측과 양자 협의를 개최해 농업분야에서 수입국으로서의 공통 관심사항을 반영할 수 있도록 협조방안을 협의했다. 이와 별도로 허 장관과 함께 우리측 공동 수석대표인 황두연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일본과 농업협상 공조방안을 협의했고, 농산물 수출국인 칠레에는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을 설명하고 대폭적 농업시장 개방은 수용하기 어려움을 강조했다. 앞서 10일 황 본부장은 농업분야 작업그룹 의장을 만나 우리측의 농업현실을 설명하고 농업시장 개방이 신축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우리 대표단은 향후 개도국 지위 유지 협상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될 가능성 등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번 수정안 마련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를로스 페레스 델 카스티요 WTO 일반이사회 의장이 마련한 선언문 초안은 개도국에 대해서는 개방폭과 속도를 신축적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선진국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선언문 초안은 개도국에 대한 관세상한 설정 여부는 계속 협상토록 하고 있다. G-9은 한국을 비롯, 노르웨이, 스위스, 대만, 이스라엘,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불가리아, 리히텐슈타인 등 NTC를 중심으로 이뤄진 농산물 수입국 그룹으로, 최근에는 모리셔스가 빠진 대신 일본이 공동 협의에 참여하는등 참가국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G-9은 미국과 최근 NTC 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있는 유럽연합(EU) 간에 형성된 초안에 반대하고 있고, 또 주요 농산물 수출국 그룹인 케언즈 그룹에 중국, 인도 등이 연합해 농산물 수출국의 특징을 갖는 개발도상국 21개 그룹(G-21)에도 동참하기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다. 미국-EU 초안은 관세 상한을 설정하면서 이를 넘는 품목을 인정하더라도 TRQ 증량을 요구하고 있으며, G-21은 기본적으로 개도국이자 농산물 수출국 중심으로 구성돼 미국과 EU를 겨냥해 선진국 농업보조금의 대폭 감축을 요구하고 있어 덩달아 우리도 추곡수매제 등 보조금 규정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농업협상은 과거의 수출국-수입국 구도에서 미국과 EU의 선진국 그룹과 G-21 중심의 개도국 그룹으로 협상의 대립각이 형성돼 있는 형국이다. 우리 대표단이 소속한 G-9은 이 상황에서 양측에 맞서 협상을 추진해야 하는 형편이라 협상 전망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고 대표단 관계자들이 전했다. 앞서 한국을 포함한 G-9 국가들은 스위스의 초안을 토대로 고위관계자 회의를 갖고 각 국이 공통적으로 이해를 같이하는 부문만을 추려내 이를 수정안으로 확정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며, 식량 안보나 국토보전 등 농업의 다면적 기능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반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U와 함께 NTC 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 경향을 보인 일본은 최근 농림상, 외상 등이 관세상한에 대해 강한 수용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G-9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조에 적극 달라붙고 있다. 한편 한국은 농산물의 비교역적 기능을 강조하는 NTC 국가들과의 비공식 협의도 가지면서 인도네시아 주도로 개도권 24-25개국이 참여하는 특별품목(SP) 프렌즈 그룹 회의에도 참여하고 있다. (칸쿤=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kimy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