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가 300만명을 넘어서면서 정부의 정책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나 금융감독당국은 단기적인 대책은없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21일 "금융기관의 연체율이 꾸준히 상승하는 상황에서신용사면 등의 대책을 내놓으면 도덕적해이를 조장해 사태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며"단기적인 대응책은 없으며 중장기적인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존의 신용불량자수를 줄이는 대책은 불가능하며 단지 추가발생 예방을위한 노력을 강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손 놓은 정부 4월말 308만명으로 늘어난 신용불량자는 현재의 속도로 늘어난다면 연내 4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며 신용불량자의 절반가량이 20∼30대라는 점에서 정부의 부담도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고민만 거듭할 뿐 묘수를 내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덕적해이에 따른 금융부실 확산우려 때문이다. 현재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가 금융권 전체로 전이될 위험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 신용불량자 등록기준을 높이거나 사면을 통해 수를 줄인다면 연체자 뿐만 아니라 잠재 연체자들까지 돈을 갚지 않아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또한 신용불량자 문제는 개인과 금융기관간 사적인 계약관계에서 비롯된 것인데정부가 나서서 채무감면 등을 조정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정부는 신용카드의 사용한도를 급격히 줄이지 못하도록 지도하고 대환대출을 활성화하는 예방적 차원의 대책을 내놓는데 그쳤다. 또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개인워크아웃제도의 채무상환기간 연장, 협약가입기관의 확대 등의 사소한 개선책만 마련했다. 금감위 관계자는 "기존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특성에 맞는 신용회복지원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는 원칙 외에는 없다"며 "앞으로는 외국처럼 입법이 추진중인 개인파산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우리나라만 신용불량자 통계를 매달 발표하는 것도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며 "신용불량자수가 엄청 많다는 통계는 정치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고 오히려 도덕적해이를 조장해 신용불량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 내부에서도 외국은 개인파산 통계만 발표할 뿐 신용불량정보는 이해 당사자들만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통계발표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나아가 연체자를 신용불량자로 규정한 신용정보업법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처럼 정부도 손을 놓은 신용불량자문제에 대해 국내의 한 증권사가 묘안을 내놓아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금융기관들이 연체체권을 별도의 특수목적회사(SPC)에 매각하면 금융기관의 건전성도 높아지고 신용불량기록도 삭제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위 관계자는 "외부에서 제안이 들어와 알아보고만 있는 중이지추진을 검토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신용불량기록이 삭제되더라도 빚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근본 대책은 없나 신용불량자 문제의 가장 근복적인 대책은 이들이 취업을 통해 소득을 얻어 연체채무를 갚는 것이다. 금융당국 실무자들도 개인적인 아이디어 차원에서 정부의 공공사업 등에 신용불량자들을 투입, 지속적인 소득원을 제공하고 연체 채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또 정부 등 공공기관이 연체 채무액이 적거나 신용회복 의지가 강한 신용불량자에 대한 취업 알선에 나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신용 상태가 좋은 구직자도 취업하기 힘든 경기침체기에 신용불량자에게취업 혜택을 준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에따라 연체금액과 연체기간에 따라 신용불량자에 대한 금융제재를 차등화하는 신용불량 등급제도를 부활해야한다는 대안도 나오고 있다. 현재 신용불량자 기준은 연체금액 30만원 이상, 연체기간 3개월 이상으로 신용불량자에 대해 명문화된 제재 규정은 없지만 통상 금융기관들은 연체금액과 연체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신용불량자들에게는 대출을 해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연체액 규모와 연체기간에 따라 신용불량자의 등급을 정하고 등급에 따라 담보대출, 신용대출 허용을 명문화 해 놓을 경우 선의의 신용불량자들이 구제를받을 수도 있게 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원.김준억기자 leesang@yna.co.kr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