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게릴라. 우리는 이 두가지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혁신(Innovation) 연구가인 게리 해멀은 단연코 '게릴라'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성실하기만 한 '꿀벌'은 불연속적이고 비선형적인 이 시대에 퇴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게릴라처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혁신성을 가져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런던경영대학원 교수인 그는 이제 이노베이션도 제품개선보다는 전략혁신이 더 중요하다고 밝힌다. 소니 IBM 시스코 등도 꿀벌이 아니라 게릴라를 선택한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그는 "미래는 잊어라"라고 외친다. 혁신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게리 해멀이 이렇게 주장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혁신시대의 앞자락에 들어섰다. '벤처' 시대가 서서히 끝나가고 '이노베이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사실 중소기업 부문에서 이노베이션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인 1982년의 일이다(벤처는 1962년 미국에서 첫 붐을 일으켰다). 이 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정책위원회는 '중소기업의 이노베이션'이란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는 중소기업발전을 위해 이노베이션 정책을 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영향 받아 미국은 1982년 중소기업 이노베이션 촉진법을 제정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외주 연구개발(R&D)예산을 가진 연방기관은 예산액의 일부를 중소기업 R&D에 배분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법은 중소기업 이노베이션 연구시책(SBIR)이란 제도를 만들어냈다. 이 제도는 그동안 미국에서 수많은 혁신기업을 발굴했다. 올해도 미국 중소기업청(SBA)은 이 시책에 12억달러를 투자했다. 일본도 90년대 들어 SBIR를 도입한데 이어 2000년부터 중소기업경영혁신법을 제정해 기업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이 벤처정책에 이어 이노베이션 지원책을 펴자 한국도 지난해 기술혁신법을 제정해 혁신기업(이노비즈)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이 혁신기업 발굴 정책은 지난 1982년 OECD 파리보고서에 이어 1996년 OECD 기업위원회가 내놓은 '오슬로 매뉴얼'에 근거를 둔 것이다. '오슬로 매뉴얼'은 혁신기업을 평가하는 첫째 지표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투자비율을 꼽는다. 또 전략혁신부서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중소기업들은 전략혁신부서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라인조직과 별도로 전략개발부서가 없는 기업은 '꿀벌'처럼 도태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이 전략혁신부서는 단지 기획안을 만들거나 건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능력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기업의 전략은 이제 경쟁사를 대상으로 벤치마킹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보다 한 단계 높여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전략을 펴야 한다. 물론 이같은 전략은 경쟁사의 신제품과 신사업을 파악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경쟁사의 주기적 동향보고 시스템 경쟁사의 시장점유율 분석 경쟁사의 약점과 강점분석 잠재적 경쟁상대의 출현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고객의 소리(VOC)를 체계적으로 청취하지 않는 기업은 '게릴라'가 될 수 없다. 클레임 컴플레인 분석 고객요구측정(CSI) 고객요구를 제품설계에 반영하는 기법 등이 확립돼 있어야 한다. 이번에 한국경제신문은 이런 기업혁신성 평가방식을 근거로 10개의 혁신기업을 뽑았다. 이번에 선정된 기업은 디피아이(DPI) 아이엠씨텔레퍼포먼스 한독패션 백광소재 케이알씨넷 한솔케미언스 한국도자기 카네기연구소 행남자기 헤드라인정보통신 등이다. 선정된 기업중 DPI는 '대한페인트잉크'라는 도료기업에서 혁신기업으로 거듭 태어나 좋은 점수를 받았다. 기술면에서 각종 환경친화적인 페인트를 개발하고 경영면에서 선진국 기업과 제휴를 통해 성공적인 분사화(分社化) 전략으로 성공한 것이 인정을 받았다. 한독패션은 창의적인 시장전략을 구사했으며 백광소재는 과감한 R&D 투자로 혁신성을 창출해 냈다. 카네기연구소는 기업 CEO 리더십교육 프로그램으로 최고경영자들의 혁신성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케이알씨넷은 수요자전략의 혁신성이 돋보였으며 한솔케미언스는 기업 내부의 혁신창출 능력이 남달랐다. 한국도자기는 창의적인 경영기법이 혁신성을 촉진했으며 행남자기는 축적된 기술로 고객의 소리를 파악해 냈다. 이치구 전문기자 rhee@hankyung.com ----------------------------------------------------------------- < 혁신환경 7대요건 > 1 최고경영자의 혁신의지가 있는가 2 전략혁신조직이 프로젝트팀 형식으로 운영되는가 3 자율출퇴근(Flex time)제가 도입돼 있나 4 부하가 상사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가 5 권한 위임규정이 있고 현장에서 실행되는가 6 해외연수기회 및 국내교육기회가 많은가 7 회의가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운영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