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여성 경영자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휴렛팩커드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을 들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40대 중반의 나이에 휴렛팩커드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데다 취임후 1년여만에 회사를 인터넷종합 솔루션업체로 변신시키고 본인은 회장까지 겸하는 등 승승장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피오리나는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한마디로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수익의 4분의 3을 의존해온 PC와 프린터시장이 경기 하강 때문에 얼어 붙고 있다.

지난 1월말로 끝난 1.4분기에 휴렛팩커드의 순익은 무려 59%나 줄어들었다.

지난 4.4분기에 순익이 13% 감소한데 이어 2분기 연속 순익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1.4 분기 매출액 증가율도 2.4%에 그쳐 수요 감소에 애를 먹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회사측은 오는 2.4분기중 매출액 증가율도 5%를 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올해 전체로는 매출액 증가율이 한자릿수에 머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구조조정 여파로 사내에 불만이 싹트기 시작한 것도 피오리나에게는 부담이 되고 있다.

피오리나는 지난해까지 상품별로 83개로 나뉘어 독립적으로 운영되던 HP의 각 사업부들을 컴퓨터.프린터 제조파트로 양분한 뒤 판매.마케팅 파트를 전진배치해 4개 조직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이는 대규모 제조업체 사상 가장 파격적인 구조개혁이다.

그러나 개혁이 거센 만큼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사내에는 이미 "피오리나가 구조조정을 너무 세게 밀어붙여 비용이 증가했다"는 볼멘 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올해 실적이 더 악화되면 불만도 그에 비례해 커질 수 밖에 없다.

구조조정 결과 중간 단계 매니저가 사라져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 것도 조직통제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

물론 만만하게 물러날 피오리나는 아니다.

그녀는 오는 2002년까지 매출액을 20% 늘려 5백억달러를 달성하겠다던 당초 목표를 그대로 밀고 나갈 계획이다.

피오리나는 경기하강의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경기가 나빠진 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힘이 된다. 모든게 잘 돌아간다면 누가 변화의 필요를 느끼겠는가"라며 장기 계획을 바꾸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실패할지도 모르는 한 거대한 회사가 보인다.
나는 블랙잭(카드게임)을 할 때 이길 승산이 없으면 판돈을 두 배로 걸지 않느냐. 내가 지금 하려는게 바로 그런 게임이다"

피오리나가 판돈을 쓸어갈지 빈손이 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