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선물위원회가 1일 대우 계열사의 엉터리회계와 부실감사에 대해 처벌수위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위원들이 몇가지 쟁점을 놓고 커다란 시각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분식회계의 관행을 이번 기회에 과감히 뿌리뽑자는 "강경파"와 업계의 현실을 감안하고 책임소재의 정확한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온건파"가 맞섰다는 후문이다.

이와관련, 금감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부실회계.감사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수위를 낮춰 달라는 각계의 로비도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분식회계 규모는 =증선위는 이날 대우 특별감리 결과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의 분식회계 규모가 총 22조9천억원이라고 발표했다.

대우 계열사들이 약 23조원에 달하는 돈을 장부에 계상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빼돌려 썼고 회계법인들은 이를 눈감아 줬다는 이야기다.

엄청난 공적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같은 분식회계를 저지른 대우의 부실회계와 부실감사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이날 증선위가 열렸던 것.

◆ 쟁점은 무엇인가 =막상 회의에서 처벌수위를 결정하지 못한 것은 크게 두가지 때문이었다.

우선 대우 계열 임직원에 대해서는 김우중 전 회장과 12개 계열사 임원은 물론 회계라인의 간부급까지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통보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반면 회계라인에 있다 하더라도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 임직원들은 처벌수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진동수 증선위 상임위원은 "대우 계열사의 의사결정구조가 특이하다는 점을 감안해 케이스별로 좀더 심사를 해 본 뒤 일관된 기준을 갖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워크아웃이 진행중인 신영균 대우중공업 대표이사의 경우 외자유치를 위해 발벗고 뛰고 있는데다 분사(分社)절차를 마무리지어야 하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대우 구조조정위원회에서 신 대표가 일을 마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금감위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감사를 한 것으로 밝혀진 회계법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날 증선위에서 분식회계 규모가 많은 산동회계법인에 대해선 ''설립인가 취소''라는 초강경 처벌까지 거론됐었다.

그러나 그동안 국내 회계 현실을 감안할 때 설립인가취소나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는 것은 가혹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우통신 부실감사로 영업정지 1개월 조치를 받은 청운회계법인이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영업정지 6∼12개월은 문을 닫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앞으로 어떻게 되나 =진 위원은 "다음주중 증선위 비공식 간담회를 열어 의견을 조율하기로 했다"며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우 특별조사감리반의 추가조사는 필요없을 것이며 일부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관련자를 봐주기 위해 결정을 미루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했다.

최명수 기자 m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