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도 이제 정말 못해 먹겠어"

22일 오후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단체노사협상을 앞두고 한 은행장은 협상테이블에 나가기가 정말 싫다며 이렇게 내뱉었다.

"지난번 1차협상 때는 모 은행장이 불참했더니 노조대표가 "아무개 행장에게는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라구" 은행장들을 요즘 동네북으로 여기는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정부에서는 은행장들이 은행합병에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연일 눈총을 주고 있다.

주가폭락으로 엄청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행장실에 직접 전화를 걸어 욕설에 가까운 항의를 해댄다.

직원들은 은행합병 시나리오에 떨며 은행장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가히 은행장들의 수난시대라 할만하다.

워낙 두들겨맞다보니 은행장들의 태도도 많이 바뀐 것 같다.

예전에는 "은행합병설"이 나돌 때마다 강력히 반론을 폈던 은행장들이 이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달전만 해도 대부분 은행장들은 "우리 은행은 독자생존을 할 수 있고 합병설은 근거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항간에는 독자생존 방침을 밝혔던 모 은행장이 금융당국에 "찍혀서"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루머까지 도는 형편이다.

상황이 이러니 제법 우량하다고 평가받는 은행들조차 독자생존을 추구하겠다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

은행장이나 부행장이 직접 참석하는 IR(기업설명회)는 늘 성토장이다.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IR를 해도 은행합병에 대한 질문과 항의만 쏟아진다.

최고경영자(CEO)주가가 말이 아니다.

여러 시중은행들이 한꺼번에 참가해 진행하는 노사협상장에서는 상소리에 가까운 반말을 들어야 한다.

은행장들은 정부와 맺은 경영개선약정에 묶여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나 은행 합병설로 불안심리가 팽배해 노조의 선명성 경쟁은 갈수록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렇게 은행장 자리가 힘들어진 것은 은행의 지위가 불안해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은행이 튼튼해져야 은행장도 기를 펼 수가 있다는 얘기다.

그럴때가 올런지 지금으로 봐서는 난망이다.

현승윤 경제부 기자 hyunsy@ hankyung.com